다문화 여성의 삶
진안읍 군상리 카리타 세이콘 씨

▲ 카리타 세이콘 씨
진안읍 군상리 카리타 세이콘(49)씨는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들 사이에서 '도우미'로 통한다. 98년도에 한국으로 시집와 12년 경력도 경력이지만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들의 고민거리를 가장 먼저 해결해 주는 사람이 바로 카리타씨다.

"애기를 낳을 때가 다 됐는데도 병원에 갈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아직 날짜가 안 됐다고. 하지만 상황을 보니까 애기가 바로 나올 것 같아 빨리 남편과 병원에 가 보라고 했죠."

야무진 말솜씨에 다부진 체격도 그렇지만, 성격 좋은 그녀의 성품은 다른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의 어려움을 그냥 넘길 수 없게 했다.
 
◆12년 전, 한국과의 인연

필리핀 이사야 출신인 그녀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1998년의 일이다.
필리핀 마닐라 대학 교육학을 전공했던 그녀는 3학년이 되던 해에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학비를 부담하지 못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가족들의 부양을 위해 여행사에서 일했던 카리타씨는 교회를 통해 남편을 만났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다른 이주여성처럼, 그녀에게도 한국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가장 답답했어요. 꽁치를 먹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살 수가 없었어요. 한국에서 빨리 적응하려면 말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그녀는 대학생이었던 남편의 조카에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대학생 조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카리타씨의 몫이었다.
이런 노력 끝에 그녀는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한글 실력도 늘었다.
 
◆영어 강사에서부터 가이드까지
우리고장 아이들의 영어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한글을 익히자 영어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생겼어요. 군청 옆 '진안과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지요. 같은 처지인 이주여성들은 한국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박봉에 시달리며 열악한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들에게도 저와 같은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3년 동안 '진안과외'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친 카리타씨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 임실군 관촌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됐다.
"요즘 아이들은 재미가 없으면 배우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재미있는 영어수업을 위해 준비하는 게 많습니다. 단어에 맞는 사진도 준비해야 하고, 망치를 알려주기 위해 장난감 망치도 준비했어요."

아이들의 영어교육에 이어 카리타씨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마이산 관광안내소에서 영어 가이드로 활동하며 진안군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또 다른 도약을 위해
그녀의 활동범위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영어교육을 위해 그녀는 올해 9월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테솔(TESOL)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학생들을 위해 효과적인 교수방법을 연구, 개발하고, 이 과정을 통해 영어전문교사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진안의 아이들은 대도시에 비해 영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농사일에 바쁘다 보니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내어줄 시간도 부족하고요. 이런 진안의 아이들에게 전문적인 영어교육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대학원 공부에 청소년수련관 영어수업, 그리고 나무공예까지.
바쁜 하루를 보내는 그녀지만, 집안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살림꾼이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적어 요즘 살짝 고민이라는 카리타씨는 남편은 물론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 딸이 큰 힘이 된단다.

"한국에 와서 이렇게 한사람의 생활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다, 진안의 아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칠 수 있게 돼 기뻐요. 아이들도 열심히 가르치고, 제가 힘들게 적응한 만큼 누구보다도 이주여성들의 삶을 잘 알고 있어요. 힘이 닿는 데까지 그들을 도우며 살아 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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