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겨울이 되면 춥기도 했지만 눈이 많이 내렸다. 30cm 정도의 강설량은 예사였다. 그 정도의 눈이면 당시에는 교통이 며칠씩 막히고 우편물이나 신문운송도 막혔으나 그거야 우리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로 눈이 내리면 좋았다.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지만 스케토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스케토는 스케이트의 일본어인데 그때는 썰매를 그렇게 불렀다. 그러니 진짜 스케이트는 칼발 스케토라 불렀다.

눈이 내려서 신작로에 내린 눈이 적당히 다져지면 너도나도 스케토를 가지고 도로에 나온다. 진안읍에서는 강경골재까지 스케토를 가지고 올라가서 타고 내려오면 그 관성으로 진안초등학교 앞까지는 무난히 내려오니 지금 스키장가서 리프트카 타고 올라가 스키로 내려오는 기분에 못지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악동들의 미끄럼 놀이를 어른들이 호의적으로만 봐준 것은 아니었다. 애들이 눈 위에 반들거리게 미끄럼을 내고 놀면 어른들이 야단을 쳤다. 그 때는 어른들이 야단치는 이유를 실감하지 못했지만 이제 나이를 들어보니 그 이유를 알만하다.

눈이 많이 오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눈이 오면 도로가에 사는 집들은 집 앞의 눈을 치워야 했다. 경찰에서 나와서 눈 치우는 걸 독려도 했다. 그런데 그 눈 치우는 건 아이들 몫이었다. 아이들이 없는 집이라면 몰라도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아이들이 나와 눈을 치웠다.

눈을 치우는 도구는 가마니 뜯은 조각에 새끼로 줄을 매서 삽으로 눈을 퍼 담아 그걸 끌고 방천 가에 내다 버리는 방법이었다. 눈이 많이 내리면 한번 두 번 왕래로 될 일이 아니라 제법 중노동이었다. 필자로서는 그런 중노동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특히 추운 날 장갑도 없이 눈을 만지면 손이 새빨갛게 언다. 장갑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당시는 아예 장갑이 시장이 나오지도 않았을 때였다. 신발사이로 눈이 들어가 녹으니 발도 시린 것은 물론이다.

추운 날 아침 우물가에서 세수를 하고 들어와 방문을 열자면 문고리에 손이 척척 들어붙었다. 손의 물기가 순식간에 문고리에 얼어붙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는 그런 혹독한 추위는 별로 겪은 것 같지 않다. 또 근년에는 지구온난화현상이라고 해서 이상 난동의 겨울도 많았는데 금년에는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다.

그런데 당시와는 패턴이 좀 틀리다. 당시에는 그렇게 2, 3일 춥다가도 며칠씩은 푹(따뜻)했다. 이른바 삼한사온(三寒四溫) 현상이라고 하여 우리나라는 겨울철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데 대륙고기압의 확장과 이동성 고기압의 통과 주기가 보통 7일이라서 그런 현상이 있었다.
하지만 금년의 추위는 그것도 아니다. 작년 12월 중순쯤 춥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 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작년 연말 내린 눈이 아직 녹지도 않은 상태다. 내 평생에도 이런 기후는 처음이지만 훨씬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물어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한다.

지구온난화현상이 완화되었다면 좀 춥더라도 반가운 일이지만 들리는 소식은 그게 아니다. 북극지방에 따뜻한 공기가 치고 들어가 주변의 찬 공기를 남으로 밀어내어 예년에 없이 전 세계적으로 춥다고 한다. 지구온난화현상은 지구상 예측 불가능한 여러 기상이변을 낳는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북반구는 추위에 떠는가 하면 호주 등 지구 남반구는 유례없는 홍수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러다 또 어떤 기상이변이 닥칠지 모른다. 이 기후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인류 특히 선진국들인데 책임이 없는 저개발국 사람들이나 다른 생물체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이 뿌린 씨앗의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대부분의 국가들의 정치인들은 선거를 의식하여 국민들에게 (에너지 절약 등) 불편을 감수하라는 인기 없는 정책을 수행할 수 없어 단호한 대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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