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내일 모래면 진짜 신묘년이 시작되는 설이다. 이미 한 달 전에 내걸린 2011년 캘린더에는 신묘년이라 적혀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음력 섣달 그믐날인 양력 2월 2일까지는 경인년에 해당한다.
이는 60갑자가 태세(太歲), 월건(月建), 일진(日辰)에 배치되는 것은 음력이기 때문이다.
신묘년은 토끼의 해라고 하는데 이는 60갑자의 뼈대를 이루는 천간(天干), 지지(地支)에서 12개 지지를 각 쥐, 소, 호랑이, 토끼,… 등 동물들로 상정 배치하였으므로 생긴 일이다.

아무튼 신묘년의 시작은 설날부터이다. 사람들은 첫 번째로 닥치는 일을 중시하는 속신을 가지고 있다. 장사하는 집에서는 하루 중 첫 번째 손님을 중시한다. 그 손님이 재수 없게 굴면 하루 종일 재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마수' 혹은 '마수걸이'라고 하는데 첫 손님이 외상손님이면 재수 옴 붙는다고 여겨 아침에 외상을 하는 것을 누구나 꺼려했으므로 절실히 필요한 물건이라도 돈이 없으면 아침에 가서 외상으로 사지는 않았다.

하루의 일도 이럴진대 1년의 첫날은 더욱 중시되었을 터라 설날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기도 했다.
또 예전에 설날에는 1년 신수점(身數占)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고달팠던 삶들이기 때문에 새해에는 어떤 희망적 명운이 숨어있을 지 기대를 가지고 점을 쳤는데 요즈음 로또복권을 사들고 기대를 하는 심리와 비슷할 것이다.

새해 신수점 중에서 토정비결만큼 민중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점술서는 없었을 것이다. 설날이면 동네 토정비결 책이 있는 집에 몰려가서 그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 세시풍속도이기도 했다.
보는 방법도 비교적 간단하여 먼저 나이의 수를 놓고 거기에 다시 당년의 태세수(太歲數)를 놓아 8로 제하여 남은 수로 상괘(上卦)를 만든 다음 당년 생월수를 놓되 달이 크면 30이요, 달이 적으면 29를 놓고 거기에 다시 생월의 월건수(月建數)를 놓은 다음 6으로 제하고 남은 수로 중괘(中卦)를 만든다. 그 다음 생일 날자에 다시 생일의 일진수(日辰數)를 놓고 3으로 제하여 남은 수로 하괘(下卦)를 만들어 상중하 3괘를 합하여 성립되는 3자리의 숫자를 찾아보면 되는 방법이라 책력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괘를 알 수 있었다. 다만 예전의 토정비결은 한문으로 되어 있거나 한글로 번역되어 있어도 한문 투의 비유문장이라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식견이 좀 필요하기는 했다. 따라서 정초에는 동네에서 글줄이나 읽었다 하는 사람들의 집에는 토정비결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붐볐다.

토정비결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 1517 ~ 1578)이라는 분의 저술로 알려져 그분의 호 토정을 따서 명명된 이름이다.
토정선생은 기인이자, 이인(異人)이고 선지자, 예언자이기도 했다. 이 분은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의 토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土亭)이라는 호가 붙었다. 이분의 기행과 이적이 하도 이름이 나자 사람들의 추천이 있어 포천현감과 아산현감을 지냈는데 이 당시의 이적과 신묘한 예언 등이 야사에 많이 전한다.

이처럼 이름이 나자 연초면 신수를 봐달라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렵도록 쇄도하여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비결책을 저술했다고도 전하나 이 책이 과연 토정선생이 저술한 것이냐 하는 데에 의문을 가진 사람도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누가 지었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이 조선말기 희망을 잃은 민중들이 길흉화복을 일차적 관심사로 두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나타나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지금 인터넷에는 토정비결을 서비스하는 유, 무료 사이트도 많다.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쉽게 1년 운수를 검색할 수 있다. 다만 점괘를 믿거나 말거나는 각자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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