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어떻게 볼 것인가

/박대길 군청 학예연구사

 

지난 10일자 한국일보를 보면, 한국일보가 창간 51돌을 맞이하여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사와 함께 각각 자국민을 대상으로 동시에 실시한 ‘2005 한일 국민의식 공동 여론조사’가 실려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일본에 대해 9%가 신뢰하고, 일본인의 우리나라 신뢰는 59%라는 부분이 강조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올 들어 발생한 일본측의 독도 영유권 주장, 후소샤 교과서 왜곡 파동, 일본 정부인사들의 잇단 과거사 망언 등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일(對日) 감정을 끊임없이 자극한 반면, 일본인들은 한류열풍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우리나라 문화에 보다 더 많이 접하게 되면서 점차 우리나라를 친근한 이웃으로 인식한데 따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최근의 사건들에서 영향을 받았겠지만 우리가 일본을 신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들이 근면하고 친절하며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증언부언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굳이 그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그들과 이웃하면서 오랜 역사를 이어온 우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선뜻 신뢰할 수가 없게 된다.
더불어 최근에 그들이 행한 속이 환히 보이는 행태를 보면 더욱 더 신뢰하기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전세계인의 공분을 산 전쟁 주범국의 하나이면서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피해를 부각시키며 마친 피해국으로 둔갑하려는 행태, 이웃 나라는 안중에 두지 않은 채 전쟁범죄자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총리와 이를 부추키는 우익세력의 오만방자함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결코 북한을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 35년간 한반도에서 자행된 천인공노할 만행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은폐한 채 형식적인 사과를 반복하면서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몰염치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이와 같은 겉과 속이 다른 행태는 운동경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예선전에서 북한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가지고 심판과 상대팀 선수를 위협했다는 이유로 국제축구연맹이 제재를 운운했을 때, 최근에 발생된 폭발적인 대일감정 때문에 북한에서의 경기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던 일본이 국제축구연맹과의 막후 접촉을 통해서 제3국에서의 무관중 경기라는 유례없는 제재를 가하도록 하고는 짐짓 딴청을 부리는 일본의 행태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일본에 직접 가서 보기 전, 아무리 늦은 밤거리에서도 신호등을 지키는 일본인과 일본인 차량이 소개된 적이 있다. 그것도 국내 방송사에서 직접 일본에 가서 촬영한 것이니, ‘일본인은 뭔가 다른가 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밤 10시 경에 신호등을 건너다가 질주하는 차량에 자칫 사고를 당을 뻔한 경험이 있고,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몰래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하지만, 국내 방송사가 일본에서 촬영할 때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일본인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던 것이다.
이 글을 통해서 일본인을 험담하고 그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작하여 대일감정을 부추킬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그들의 본 모습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들이 우리를 긍정적으로 또는 우호적으로 본다고 해서, 우리도 그들과 같이 보기에는 우리의 상처는 깊고 크며, 그들의 행태는 선뜻 신뢰할 수 없도록 해 왔기 때문이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거나 신호등에 따라 길을 건너는 행인이 질주하는 차량에 자칫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곳이 일본이라는 객관적인 사실과 함께 그들을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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