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배인재 진안군장애인복지관 관장

한 사람의 진실한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자기성찰을 가져오게 합니다. 2천년 전 중동의 광야에서 젊은 나이에 불꽃처럼 사랑을 자신의 몸으로 전파하던 청년 예수의 삶이 그렇고, 10년 전 일본 땅에서 낯모를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철로위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 의로운 청년 이수현님의 삶이 그랬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고 오직 자기를 버리기까지의 자기희생과 이웃사랑은 가히 엄숙하고 장엄합니다.
 
청년 예수의 삶을 따르며 살고자 했던 또 다른 청년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살피는 참의료인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가난한 수단의 작은 시골마을 톤즈의 민초들과, 특히 한센인들에 쏟았던 사랑은 예수의 전범을 따랐던 전형적인 제자의 도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 속에 나오는 헐벗은 사람들에게 이태석 신부님은 분명 의롭고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그들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의 진정성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수현님의 경우에서 처럼 의로운 사람들을 예우하고 돕기 위해서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직무 외의 행위로 위해(危害)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과 그 유족 또는 가족에 대하여 그 희생과 피해의 정도 등에 알맞은 예우와 지원을 함으로써 의사상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법의 취지와 적용이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마땅하고도 당연한 존재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The Good Samaritan Law)' 제정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 주지 않은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자는 것입니다. 나 이외 존재의 곤경과 어려움에 대해서 잘 살피지 못하는, 아니 의도적으로 외면하기 바쁜 현대인들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세태의 반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편한 고백이지만 올 겨울 같은 혹한의 추위에 집밖에서 생활하다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 수많은 노숙인들에게 어쩌면 현재 생명이 살아있는 우리들은 사회적 타살의 공범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의 먹을거리와 잠잘거리를 챙기는 의로운 타자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가 연말연시에 납부하는 이웃돕기성금(공동모금)은 사회적 타살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는 약간의 면피성 성금으로서의 측면도 있으니 조금이라도 주저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이수현님의 기일에 맞추어 이를 기억하고 엄숙하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추모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삶의 속도에 지쳐 많은 것을 망각하면서 살기에 바쁜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대단히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의사상자들의 숭고한 뜻을 잊지 않고, 사회정의를 바로세우는 일에 우리 지역 주변을 되돌아보는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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