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 도통리 이의철 씨
군청과 기술센터, 농협의 역할론도 제시해

▲ 이의철 부부
지난 3일 성수면사무소2층 강당. 주민과의 대화시간이 되자 일부 주민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준비한 건의를 위해서 미리 써놓은 원고를 검토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모습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기자의 기대는 '그럴듯한 비전'이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의자들은 보조금지원이나 다리건설, 포장, 기자재 지원 등에 한정되어 있었다. 거의 같은 내용들을 들으며 11개 읍면을 다니는 기자는 별로 기대감 없이 기자석에 앉아 있게 된다. 물론 귀를 열게 하는 한마디도 간간히 나오긴 한다. 성수면 이의철(66세) 씨의 발언이 그랬다.
 
◆당당히 진안의 비전을 말하는 농부
"일부지역에 한정되어 있는 유기농 지원을 전 지역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친환경농업을 지향하는 생태진안에 온 외부인들은 제초제로 붉게 물든 논두렁이나 고기 한 마리 살지 못하는 마을 하천을 보며 실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정되어 있는 지역과 작물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 주십시오."

젊은이도 아니고 친환경과 건강을 비전으로 삼고 귀농을 선택한 새내기 주민도 아니어서 신선했다. 지긋하게 샌 머리에 '지원'이 아닌 '비전'을 밝힌 주민은 몇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당시의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며 대화를 나누기를 희망하자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 주었다. 바람이 몹시 불던 7일 오후. 고추를 심다가 연락을 받고 집으로 들어가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머리칼이 허옇게 새었어도 말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지난 연초방문 때의 발언을 언급하자 손사래를 치며 덧붙였다.
"할 말을 다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요. 시간제한도 있었고 대중이 모여 있는 곳에서 비판적인 지적이 미칠 파장을 생각해서 였어요."
그는 진안군이 가지고 있는 천혜의 환경을 조금만 활용하면 세계적인 유기농과 청정의 구호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교육을 많이 받았습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나를 위한 일이라기보다 내가 가진 지식을 주변에 나누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이라 믿었지요. 한마디를 놓칠세라 열심히 공부했고 실천했습니다."
그의 지식은 실천과 실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친환경 농사의 기본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생물제제나 퇴비를 사용해서 땅의 힘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땅이 살아나면 그 이후엔 자연이 알아서 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친환경농업 관련해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든 알만한 내용이다. 이에 더해 자신이 실험한 내용도 있다.

"퇴비와 미생물제재를 사용한 논과 퇴비 없이 친환경제재만 사용한 곳을 구분해서 농사를 지어봤어요. 1년 시행이지만 차이는 없더라고요. 이런 실험을 개인이 실행하기는 힘든 일이라 생각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결국 행정과 지도기관 등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반세기동안 진행되어온 '관행'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친환경농업으로 바꾸는 길은 대부분 개인적이거나 뜻을 모은 마을단위에서 이루어진 사례가 대부분이다. 물론 외국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행정에서, 국가에서 시책으로 적극적으로 교육과 홍보, 사업시행을 통해서 국가 전체를 유기농으로 바꾼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견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시의 유기농업을 가꾸어 궤도에 오른 쿠바의 경우나 철저한 관리와 교육 속에 사명감으로 실천하는 유럽과 미국의 유기 농가들의 사례는 무역개방속에 위태롭게 놓여있는 농촌에게는 절대적이다.
 
◆군청, 기술센터, 농협의 역할론
"일반농가는 자신이 없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망설임을 해소하기 위해서 군청, 기술센터, 농협 등이 친환경농업을 위한 지원, 연구에 힘을 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군청은 행정지원하고 기술센터에서는 기술전수나 실험을 하는 데에 힘을 쓰고 농협은 유통을 맡아주면 되지 않겠어요? 이런 체계 속에서 농민은 농사에만 전력할 수 있게 됩니다. 농민이 농사만 짓고 기술과 판매는 걱정하지 않으면 금방 보급될거라구요."

논리적인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지금까지 친환경농업은 개인이 떠안아야 할 '구도자의 길' 정도로 인식되었다. 개인이 한정된 노동력으로 수용할 수 있는 유기농이란 한계가 있다. 제초와 방제에 노동력이 '관행'에 비해 몇 배 투여되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풀과 벌레들의 피해. 이를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농부들은 친환경농업으로 전환을 두려워한다.

"자연 생태계가 복원되면 독한 화학물질을 쓰지 않아도 작물을 키우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새가 많아지면 나방의 애벌레들이 줄어들고 거미가 많아지면 진디를 잡습니다. 시기가 절묘해서 해충이 번식하기 전에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생태'입니다. 풀이 문제인데 부직포를 깔아주고 멀칭을 해 주면 일손이 훨씬 줄어듭니다. 독을 마시는 것 보다 훨씬 건강한 일이죠."

그는 어떻게 친환경을 실천하게 되었을까. 책으로 공부하고 교육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젊은 유기농부와는 다를 것이 분명했다. 유기농을 실천하는 농부들도 정도와 깊이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생활 속 깊이 생태를 실천하는 농부들은 흔치 않다. 보통 책을 파서 지식을 익힌 농부들은 금방 한계에 부닥친다. 특히 사무실에서 일만 하던 이들이 귀농을 했을 경우는 더하다. 그의 경우엔 농약에 대한 경험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10년 전 소를 키웠어요. 두 마리였는데 이놈들이 설사를 자꾸 하더라고요.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몰랐지요. 그러다가 볏짚을 빼봤어요. 썩으라고 물을 주고 덮어놨지요. 아 삼년이 지나도 그곳에서 벌레 한 마리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죠. 대단히 위험한 물질을 좋다고 쓰는구나."
 
◆돈벌이 보다 건강과 양심이 우선
농약의 위해성을 몸소 느낀 농가들이 철저한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사례는 이제 흔하다. 문제는 농약과 화학비료의 독은 서서히 몸에 쌓인다는 데에 있다. 깨달으면 이미 늦은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실천농가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현재 농촌에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는 의욕이 부족한 늙은 농부들이 대다수라는 점도 들 수 있겠다.

"자, 쌀 수매를 농협에서 합니다. 중간상인들이 제시하는 가격과 별로 차이가 크지 않아요. 결국 농협은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죠. 농민들은 팔지 못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값이 어떻든 간에 넘겨야지요. 제 입장에서 보면 더 문제는 친환경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어요. 친환경 쌀을 맡기려고 해도 인증기준에 따른 수매조건이나 단가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죠. 받지를 않아요. 보세요. 품을 더 들인 친환경 쌀을 화학비료와 농약 쳐서 지은 쌀과 똑같이 받고 팔고 싶겠습니까?"

농협에 대한 지적이 날카롭다. 친환경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은 현재 농정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뜻도 된다. 그는 면적대비 장려금으로 친환경을 장려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면적이 쉽고도 빠르게 확산이 되고 현재 의지가 없는 농민들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친환경 농업은 대세입니다. 요즘 농약상에 가보세요. 친환경생물제들도 들어와 있어요. 앞으로 몇 년 지나면 그것들이 대세가 될 거라고요. 농가들이 만날 뒤에 서서 따라가니 잘 살수가 없지요. 그렇다고 행정이 앞에서 끌어주는 힘도 약하고, 기술센터에서 친환경에 대한 실질적 지원도 부족하고 농협은 유통에 관심이 없으니……."
그의 쓴 웃음 속에 오늘날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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