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김 진 경희대 객원교수, 진안군체육회 상임부회장

농민들에게 종자는 일 년 농사의 절반이다. 각종 농산물은 생산을 통해 얻은 올해의 수확물이기도 하지만, 종자로써 다음해 농사를 위한 필요한 생산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종자가 농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하면 농부아사 침궐종자(農夫餓死 枕厥種字)라 했겠는가! 농부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다음해 농사지을 종자만큼은 베고 죽는다는 것이다. 농가에서 종자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은 '올게심니'라는 풍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해 농사에서 거둬들인 벼나 수수, 조 같은 햇곡식 이삭 가운데 튼실한 놈을 골라 한 줌씩 묶어 벽에 걸어놓는 풍습이다. 올게심니 한 곡식은 어떤 일이 있어도 먹지 않고, 이듬해 씨앗으로 쓰거나 떡을 빚어 조상님 사당에 올리곤 했었다.
이런 올게심니는 수천 년 동안 농사를 이어온 근간이다.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종자를 생산하고, 보존해온 농민의 권리가 점차 지적재산권이나, 특허와 같은 법과 제도로 다국적기업에게 빼앗기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 농민을 죽이며 배를 채우는 기업
캐나다 서부의 농민들은 40%정도가 유채의 일종인 유전자조작 카놀라(이하 GM카놀라)를 재배하고 있다. 하지만 슈메이저氏는 그곳에서 전통적인 카놀라 종자로 농사를 지어왔다. 그는 <몬산토>회사의 GM카놀라 종자를 구입하지도, 불법으로 취득하지도 않았다. 한데 주변 농토의 GM카놀라의 꽃가루가 그의 농토로 날아 들어왔다.

엄밀히 말하면 몬산토社의 카놀라 씨앗이 그의 농장으로 무단 침입한 것이다. 그렇게 바람에 날려 온 GM카놀라가 자랐을 때, 후 몬산토社에 의해 고용된 일명 '유전자 경찰관'이 그의 농장에 무단 침입하여, 농장주인 슈메이저氏의 승낙도 없이 종자 샘플을 채취하여 갔다. 상식적으로 모든 정황을 판단한다면 몬산토社의 불법적인 행위가 문제될 법 하다. 하지만 캐나다 법원은 농민인 슈메이저氏에게 GM카놀라 종자에 대한 독점특허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몬산토社에게 9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다. 몬산토社는 이런 식으로 전 세계의 농부들을 상대로 2천억 원이 넘는 배상금을 받아 냈다. 가장 큰 금액으로는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농부에게 30억 원이 넘는 배상금을 받아낸 적도 있다.

이와 같이 글로벌기업들이 개발한 종자들은 구입하지 않은 종자의 사용은 물론이요, 한번 판매한 종자의 재사용까지도 불가능하다. 우리의 풍속인 올게심니가 불법화 되어 가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종자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한번만 발아하고 자손을 생산할 수 없도록 만드는 <터미네이터 기술>까지 사용하고 있다. 아예 올게심니의 기능을 없애버린 잔인한 기술개발이다.
 
* 석과불식(碩果不食)
주역에 석과불식이라는 말이 있다. 큰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말인데, 지금의 내 욕심을 버리고 후대에게 복을 끼쳐 준다는 뜻이다. 예를 들자면 감나무의 까치밥은 크고 튼실한 과실로 남긴다. 까치가 감을 먹고 나면 그 씨가 떨어져 새로운 싹을 틔우기 때문에, 좋은 종자를 남기려는 지혜가 담겨 있다. 최근 들어 토마토 종자 1kg이 금 1kg보다도 비싸다. 그만큼 종자 산업은 블루오션이 분명하다.

지난해 세계 종자산업의 규모는 약 700억 달러(79조원)로 추정한다. 특허 등, 종자와 연계된 산업까지 합치면 시장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한데 육종기업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흥농종묘, 중앙종묘, 서울종묘 등 국내5대 종자업체는, IMF 당시 미국의 몬산토와 듀폰, 스위스의 신젠타 등 외국기업에게 모두 넘어갔다. 그로 인해 IMF이후 우리 종자시장의 70%를 외국계기업들에게 내줘야만 했다. 허나 최근 들어 <농우바이오>라는 토종 종자기업의 노력으로 인해, 현재는 국내기업이 50%라는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 세계시장의 64%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기업들은 <농자지천하지대본>이란 말을 모른다. 오직 kg당 가격만이 중요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씨앗은 수천 년에 걸쳐 전해져 내려온 조상들의 역사와 문화, 생물의 다양한 유전자원 등이 담겨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씨앗에 대한 농민들의 권리는 국가와 민족의 이름을 걸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생존관점의 주권임을 깨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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