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요즈음 <진안신문>의 광고란이 따끈따끈하다. '정의실천진안군민연대'와 진안군과의 성명전 때문이다. 이런 일에 섣불리 나서면 어느 쪽에서든 욕을 먹게 되어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외면해 버리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명색이 지역신문 고정칼럼 필자가 외면만 해버리면 평소 정론직필을 주장하던 언설(言說)이 모두 위선이 되어버릴 테니 욕을 먹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먼저 군민연대 쪽에 쓴소리를 해야겠다. 얼마 전 군민연대가 출범할 때 이 난에서 기대반 우려반의 얘기를 한 것이 기억난다. 우려라는 것은 이처럼 좁은 지역사회에서 시민운동을 하려면 '모진사람',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호로자식' 소리까지를 들어야 시민운동다운 시민운동을 할 수 있겠기에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시민운동은 제도권이나 언론이 미처 다루지 못한 사각지대를 다루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군민연대가 발족한 이후 시민운동다운 활동상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성명서라는 제목으로 진안군정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 내용은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거나 이미 파다하게 알려진 사안들로 군민연대의 활동으로 얻어진 결과물이 아니었다. 또 그 내용이 좁은 지면에 너무 광범위하게 취급되어 도무지 무엇이 문제인지 내용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즉 너무 서투르게 접근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성명서 발표이후 군민연대의 대표는 내용에 불만을 품은 인사들에게 전화로 시달리기도 하고 엉뚱하게 배우자가 경영하는 업소에 항의방문을 한 사람들 때문에 곤욕을 치룬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는 당연하다. 시민운동을 하려면 그만한 시련은 각오해야 하는 거다. 또 구성원 중 일부는 대외적 입장표명에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고 항의했다고도 한다. 절차적 잘못도 범한 셈이다. 이 부분은 반박성명을 낸 다른 사회단체들도 조심해야 될 일이다.
이제 시각을 돌려보자. 비판과 비난, 비방은 비슷한 것 같지만 내용은 판이하다. 비판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판단하거나 밝히는 행위고, 비난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이고, 비방은 남을 헐뜯는 행위를 말한다.

비판은 언론자유가 존재하는 민주국가에서라면 정치, 정책, 행정, 또는 공적영역이라면 광범위하게 허용된다. 하지만 비판을 가장한 비난도 많다. 또 비판과 비난은 경계선이 모호할 때가 많다. 정치판에는 비판을 위한 비판(비난)이 판을 친다. 이러한 비판에 잘 대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제자가 스승에게 묻기를, "남에게 욕을 먹으면 참기 힘듭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스승이 대답하기를 "누가 그대에게 음식을 주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대가 받지 않으면 어찌 하겠는가?" 제자 대답하기를 "준 사람이 도로 가져가겠지요." 스승께서 "맞다 욕도 그와 같아서 받는 사람이 받지 아니하면 준 사람이 다시 가져가느니라."

비판에 가장 잘 대처한 정치가는 아마 에이브라함 링컨일 것이다. 링컨이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대통령은 되었으나 위싱턴 정가는 그에게 냉랭하였다. 시골뜨기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워싱턴 정가의 엘리트 정치인 들은 자존심이 상하여 링컨에게 욕설에 가까운 비판을 곧잘 해댔다고 한다. 하지만 링컨은 인간적으로 참기 힘든 비방에도 잘 참아내고 비판자들을 특히 우대했다고 한다. 그가 암살자의 손에 비명에 가자 이를 가장 슬퍼한 사람이 가장 비판(비방)에 앞장 섰던 정적이었다고 한다.

이번에 군민연대의 성명서는 기실 반응이 매우 미미하였다. 필자가 알아본 바로는 10에 7, 8은 성명서를 읽지 않다가 진안군 측에서 반론을 제기하니까 되찾아 읽었다고 한다. 정치적 관점에서만 보면 진안군의 대응은 득보다 실이 많은 셈이다.
아무튼 이번 일은 쓴소리를 하는 필자도 입맛도 매우 씁쓸하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