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호 진솔대안학교 교장

산업사회를 규정하는 용어 중에 대량, 표준이라는 말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되어진 말은 “大衆”이라는 말일 것이다.
‘대중’의 개념은 프랑스 혁명에 앞서 유럽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투쟁과정에서 귀족들의 반 부르주아적 수식어였던 것이 부르주아의 승리와 더불어 하층사회를 가리키는 말로 변형되어 사용되어지다가 20세기초 페르디난트 퇴니에스, 에밀 뒤르켐, 막스 베버 같은 사회과학자들이 전통사회로부터 근대산업사회로의 이행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통해 그 뜻이 심화되어 현재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들에 의한 현재의 사회과학적 의미는 ‘사회적 탈 조직화’, 1차 집단의 와해, 가족·지역공동체·종교와 같은 전통적인 사회적 유대의 파괴, 대규모 산업사회의 발생, 도시의 인구집중 등에 주목하면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동질적인 것에서 다원적인 것으로 변화하는 역사의 과정이라 했다. 그리고 필자가 한마디를 덧붙인다면 그것은 개인의 무덤이다.
정치판을 보면서도 매스미디어를 대하면서도 요즘 유행하는 소위 “싸이질”하는 아이들을 대하면서도 변화의 물결을 느낄 수 있다. 알아듣지 못한 신조어가 조악하게도 나뒹구는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공간일 것 같은 공간은 이미 신종의 정보대중들의 낙인만이 난무하고 있었다.
얼마 전 어떤 정치인 한 분이 농촌에 농사를 거들어 준다고 갔다가 김매기 5분만에 무더위에 지쳐 풀밭에 주저앉은 사진을 짓궂게 기자들이 사진으로 올려 기사화 한 적이 있었다. 그 표정이 평상시 절제된 모습이 아니고 넋을 놓은 정말 개인적인 모습의 사진이어서 표정과 태도로서는 본인으로서도 난감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일하는 장갑을 거꾸로 끼고 있어서 이를 본 네티즌들의 비난이 집중되었었다. 수 백 건의 거의 익명성의 글을 보면서 당하는 본인의 심정은 자 잘못을 떠나 얼마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웠을까 생각되었다. 실체적 진실은 필요 없는 이미지의 포로된 대중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간음하다 현장에 붙잡힌 여인에게 다가가 앉아 땅에 무언가를 쓰시던 예수님. 그리고 돌을 든 성난 군중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던 예수님. 그 예수님은 그 간음한 여인만을 위해  그 여인이 주저앉은 키 높이에 맞주어서 대하셨다. 사람들의 정죄와 편견도, 대중들의 심리도, 그들의 돌도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현진건 선생의 소설 “빈처”라는 작품에서 우리가 느꼈던 감동의 크라이막스는 “왕후의 상 걸인의 찬”이라는 남편의 쪽지의 의미를 요즘 세대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기술 문명 뒤에 감춘 자기의 적나라함이 범죄를 구성하고도 남을 만큼 무책임한 탈 조직화가 이미 남의 입장은 없어도 된다는 신념으로 치부될 만큼 진행되고 있지 않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때 등교 길에 따끈한 도시락의 느낌이 가방을 투과해 전해지면 입김 호호 불던 추위에도 나를 감싸안았던 어머니의 사랑을 급식세대의 아이들이 알기나 알까? 4교시 끝나고 배고픈 시간 난로에 놓인 노란 양철통 도시락 사이에서 퍼지는 누룽지냄새에 뚜껑을 열었을 때 나오는 계란 부침, 이 맛을 우리의 아이들은 절대 모른다. 그러다 다 먹을 도시락을 싸다 떨어진 별표로 접혀진 어머니의 쪽지! 바로 어머니의 편지 한 장. “천호야! 오늘이 네 생일이구나! 엄마가” 부러진 연필에 침을 묻혀 쓰셨을 것 같은 삐뚤삐뚤 서툰 글씨 누런 종이...... 동무들이 볼까봐 ‘아이참 엄마는 글씨도 못 쓰시네!’하는 푸념에 부끄러움은 잠시 30여 년의 세월을 뚫고 아직도 도시락의 따스함과 누룽지 내음, 노란 달걀부침, 그 필적에 누런 시험지 쪽지가 아직도 가슴에 있다.
능률과 생산성, 풍요와 복지 이러한 것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급식의 편리함과 소외계층의 복지에 대한 편익 때문에 또한 사라지고 없어지는 소중한 가치는 얼마나 많은가? e-mail의 기능을 우편엽서는 대체하지 못한다. 그래서 전보가 사라졌거나 사라질 운명에 쳐하지 않았는가? 대중매체의 위력에 우리는 막대한 정보를 얻었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실을 경험했는가? 쪽지에 편지를 쓰자. 최소한 나와 팔 벌려 안을 사람에게라도 좋으니 그만을 위해 그에게 맞춘 쪽지를 날리자. 연필심 갈아 가지고 지우개로 쓱쓱 지운 흔적이 남아도 좋다. 내 아이만을 위한 편지 그것이 교육의 개별성이자 민주사회의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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