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면서도 실상 그 뜻이 명확하지 않은 말로 정체성(正體性)이라는 말이 있다. 정체성의 사전적 뜻으로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고 적혀 있으나 역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누가 "당신의 정체성은 뭐요?"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겨우 대답할 수 있다면 "내가 누구의 아들이고, 또 누구의 아버지이며, 누구의 남편이오. 그리고 어느 고장에 살며 그 고장 소재 초등학교를 다녔다오."하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충분한 대답은 아닌 것 같다. 그따위 인적사항이나 알자고 '정체성'을 물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의 아들로 아들노릇을 잘 했으며 누구의 아버지로서 아비노릇을 잘 했는지, 남편으로의 역할은 어땠는지, 내 고장에 살면서 이웃에 바람직한 사람이었는지, 학업성적은 어땠는지, 이런 부분까지를 망라해야 정체성의 물음에 대한 대답에 근접할 것이다.
도시로의 인구유출이 심화되면서 서울 등 대도시에는 출신지 사람들의 모임인 향우회가 만들어진다. 향우회 활동은 (몸은 비록 떠나 있지만 나의 고향은 어디다 하는) 일종의 정체성 확인행위라 할 수 있다.

서울에는 전북도민회를 비롯하여 각 시·군민회가 있다. 진안도 군민회를 비롯 각 읍·면향우회도 조직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재경 완주군민회는 조직되어 있는데 재경 전주시민회는 없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정체성도 구별이 가능한 소수일 때 적용이 되지 전주처럼 방대한 규모가 되면 소속감이 생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진안의 경우도 마을단위 향우회가 읍·면향우회보다 더 잘되는 곳이 많다. 적을수록 결속감이 강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향우회도 이제 젊은 사람들의 참여가 미미하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고향이라는 정체성이 희미하기 때문이다. 나이든 세대는 고향에서 자연을 체득하고 살았고 고향에 얽힌 역사들은 윗세대로부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 고향이 깊이 각인이 되어 그것이 고향사랑이 되어 객지에 나가서도 향우회를 조직할 만큼 의지가 있지만 지금세대는 설사 고향에 살았어도 고향산천보다는 TV나 PC에 익숙하고 주변과의 대화가 적어져 고향에 대한 애정이 형성될 여지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향우회와 더불어 각 학교 동창회도 정체성 확인행위다. 특히 초등학교 동창회는 의미가 더 크다. 꾀복쟁이 친구들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동창관계는 일종의 신분관계이기도 하다. 부모 형제간은 혈연이지만 동창관계는 학연으로 형성되어 거기에서 빠지고 싶다고 빠질 수도 없고 마음에 안 든다고 내칠 수도 없다.

그래서 40, 50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즉시 동창회가 만들어지기 예사였다. 그러나 근래에는 초등학교동창회가 조직되지 않는 기수가 더 많다고 한다. 진안초등학교의 경우 금년에 99회가 졸업했는데 70회 이하 기수가 동창회를 한다고 현수막을 내건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어지간하면 누구나 다 대학가는 세상이니까 초등학교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아져서 그런지 앞의 향우회의 경우처럼 고향에 대한 애정이 적어져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측면을 볼 때 이런 현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인간의 정체성은 인간과의 관계, 자연(향토)과의 관계에서 바람직하게 형성되는데 향우회나 동창회를 외면하고 고향을 외면해서는 아예 정체성을 논할 여지도 없다 하겠다.

모든 게 다 명암이 있는 모양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발전은 어느 정도 이루어 냈지만 반대로 인간으로서 소중한 부분을 희생당하기도 했고, 컴퓨터산업 특히 개인용 컴퓨터(PC)와 첨단통신기기의 대중화로 인하여 인간이 기계의 부속물처럼 되고, 인간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다. 비교적 고생을 덜한 세대는 오히려 주변에 대한 고마움을 모른다. 이런 커다란 문제를 해결할 대책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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