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요즘 애들의 글씨 솜씨가 영 말이 아니다. 글씨도 쓰는 과정에서 늘기 마련인데 쓰는 일을 컴퓨터 자판에 의지하니 글씨 쓸 일이 드물어진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글씨 솜씨가 떨어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글씨는 써야 하는데 그리는 경우도 많다.

중국 시대극을 보더라도 글씨가 나오는 소도구 즉 깃발이라던가 현판 또는 방문(榜文) 등의 글씨가 영 서투르다. 시대극이라 컴퓨터에서 출력한 글씨를 쓸 수가 없으니 필사를 해야 하는데 중국도 붓글씨에 능숙한 사람이 드물어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붓은 참으로 오묘한 물건이다. 잘 쓰면 아름다움이 넘쳐나지만 다루기가 매우 어려워 평생을 써도 악필(惡筆) 신세를 못 면하는 사람도 많다. 사용하기도 불편하다. 붓을 쓰려면 먹과 벼루가 필수적인데 절차가 복잡하고 휴대성이 극히 나쁘다. 찬란했던 동양문명이 뒤에 서구문명에 뒤진 이유도 문화의 전파에 필수적인 필기도구(붓)의 불편함에 있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중국도 처음부터 붓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문자가 생긴 이후 처음에는 숯검뎅이나 뾰족한 돌 또는 송곳 같은 금속 따위로 그리다가 나중에는 글씨를 전문으로 새기는 칼 같은 것은 만들어 썼던 모양이다. 그 흔적은 갑골문이나 금문 등에 남아 있다.

당시는 종이도 만들어지지 않아 글씨를 새기려면 주로 대나무나 나무를 다듬어 사용했다. 책(冊)이란 한자는 대나무를 실로 엮은 모양을 상형한 글자이다.

천자문에 염필윤지(恬筆倫紙)라는 구절이 있는데 붓은 진나라 때 몽염(蒙恬)이란 사람이 만들고 종이는 한나라 때 채륜(蔡倫)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뜻이지만 사가에 의하면 특정한 사람의 발명품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 의하여 점차 개량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어쨌든 칼 따위로 글씨를 새겼을 때에는 초기 상형문자인 전서를 주로 사용했지만 붓이 보급되자 쓰기에 편한 예서(隸書)를 거쳐 해서(楷書)로 정형화 된다. 해서란 이른바 정자체이다. 정자체이지만 이 해서를 쓰는 일이 쉽지 않다. 배우기 쉬운 어린 시절에도 수년 아니 십 수 년 공력을 들여도 완성하기에 어렵다. 정자체이기 때문에 조금만 서툴러도 바로 티가 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그래서 한석봉 같은 명필은 아주 드물다.
또 조각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명나라 때 활자로 만들기 편한 자체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명조체(明朝體)이다. 이 명조체가 익숙하게 되어 지금도 대부분 출판물에서 이 명조체를 애용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셨지만 붓글씨와는 연계시키지 못한 것 같다. 훈민정음을 보면 한글을 붓글씨와 관련이 없는 고딕체 비슷한 자체로 표현하였다. 지금 컴퓨터 서체로 판본체라고 하는 자체이다. 훈민정음이 목판본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이런 체는 붓으로 쓰기에 불편하다. 그러니 한문글씨에 익숙한 사람들이 어쩌다 한글을 쓰게 되는 경우에는 한문글씨 쓰는 방식으로 한글을 썼다. 이런 자체의 한글들이 광범위하게 출판되었는데 이를 지금에는 목각체라고 한다. 목각 활자본에서 온 말이다.
한편 궁중에서 한문을 잘 모르는 상궁 등 궁녀들이 궁중의 대소사를 한글로 기록하였는데 글씨가 유려하다. 이를 궁체라 한다.

어쨌든 글자는 읽으려고 쓴 것이니만큼 무엇보다도 읽기가 쉬어야 한다. 읽기가 쉬우면서도 아름답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활자도 읽기에 편한 서체로 진화해왔다. 명조체가 그토록 장수한 것은 읽기에 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컴퓨터로 서체개발이 쉬워지면서 필법을 무시한 문란한 한글서체들이 판을 친다. 일부러 서투르게 표현한 서체도 많이 눈에 띈다. 너무 말쑥한 서체에 식상해 있어 변화를 주거나 차별화하기 위해서 그럴 테지만 문제는 글씨를 잘 못 쓰는 사람의 서투른 글씨는 봐줄 수가 있지만 서체를 개발할 정도로 글씨에 능숙한 사람들이 일부러 기교를 부려 서투름을 흉내 내면 위조한 흔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상야릇한 컴퓨터 서체가 간판 같은 데에 사용되는 것을 보면 민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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