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판화가, 이철수씨의 30년 판화인생을 한데 모은 전시회가 전주에서 열리고 있다. 9월6일부터 전주역사박물관과 교동아트센터, 공간 봄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9월18일까지 계속된다.
목판화가 이철수는 1981년 첫 개인전을 통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폭압적인 사회에 보내는 저항의 언어들로, 서정적이면서도 격렬한 선묘 판화와 처음 본격화하던 출판 미술운동 등, 1980년대 내내 판화를 통한 현실 변혁운동에 열심이던 그는 1988년 무렵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판화영역을 확대해가기 시작한다. 80년대 변혁 운동과 판화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기도 한 미술적 변모는 얼핏 보기에도 크고 본질적이다. 평범한 삶과 일상사를 관조하면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찾아내거나, 다채로운 자연을 소재로 삼아서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인간의 면목을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판화세계는 따뜻하고 정겹고 진지하고 때로 초월적이기도 하면서 쓸쓸하다.

조용하고 차분한 언어가 때로 세상과 일상사를 말하면서 단호해 지기도 하지만 막연히 현실사회를 향해 있던 분노는 이제 우리들의 욕심 사납고 그로 인해 황폐해진 내면을 향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연민의 눈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자 하고, 평범한 일상이 드높은 정신으로 가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 말하는 그의 판화는 이제, 낮은 목소리로 존재의 경이를 이야기하고 삶의 긍정을 말한다.

간결하고 단아한 그림과 선가의 언어방식을 끌어온 촌철살인의 화제들 혹은, 시정이 넘치는 짧은 글이 어우러져 현대적이면서도 깊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그의 판화는 '판화로 시를 쓴다'는 평판을 들으면서 갈수록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와 글씨와 그림이 한 화면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전통적 회화를 현대적 판화로 되살렸다는 평가도 받는 그의 새로운 판화들은, 삶이 곧 그림이라서 따뜻하고 깊고 건강한 삶을 통해서만 아름다움의 내용을 채워 갈 수 있으리라는 작가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가 농촌에 정착해서 흙을 일구고 사는 것도 건강한 삶에 대한 그의 생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 삶과 그 아름다움이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그는, 제천외곽의 농촌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고, 판화를 새기고,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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