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의 집이니까요"
"내 이웃의 집이니까요"
  • 임준연 기자
  • 승인 2011.12.12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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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주에 만난 사람
일 년 새 3곳의 주택화재 진화 성공한 조성근 우편배달부

▲ 주천우체국 조성근 씨. 매서운 눈과 따뜻한 가슴이 화재진압의 일등공신이다.
날이 쌀쌀해진다. 두터워진 옷가지를 여미며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노인들. 마을 곳곳에서는 허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바람이 선선히 부는 날이었다. 연기는 대각선을 그리며 오르고 있었고, 정적을 오토바이소리와 이를 맞는 개 짖는 소리가 깨고 있었다. 주천면 운봉리. 개 짖는 소리를 몰고 다니는 우체부는 가가호호 우체통이나 현관에 우편물을 놓고 이동하는 등의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서넛 아주머니들이 모여 김장을 하는 모습에 인사를 나누고 위로 올라가는 우체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담을 넘어 이웃집에 우편물을 넣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옆집을 담 넘어 힐끔 보니 연기와 함께 불꽃이 눈에 들어왔다. 보일러실을 넘어 불꽃이 일고 있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오토바이를 몰고 다시 내려가 인근 김장을 하는 집에 알렸다. 남자에게 신고하라는 이야기를 했고 물통을 들고 다시 현장으로 올라왔다. 수돗물을 받아서 끼얹는 일을 반복했다. 곧이어 김장하던 여인들이 합세했다. 그렇게 몇 바가지의 물이 얹어지자 불꽃은 사그라졌다. 천정까지 옮겼으면 집을 태우고 말았을 불, 그렇게 몇 사람의 힘으로 꺼졌다. "초기에 잡았으니 그리 끌 수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조성근(53) 우편배달부. 처음이 아니었다. 올해만 이미 두 차례 경험이 있었다.

"한집은 너무 진행이 되어 발견하는 바람에 이미 많이 탄 상태였다. 두 집은 모두 화목보일러에서 연통과열이나 나무투입구에서 튀어져 나온 불씨가 장작에 옮아 붙으면서 비롯된 불이었다."
나무보일러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난방비를 절약하는데 있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새로 짓는 집이나 보일러를 바꾸는 이들의 선택으로 농촌에서 보일러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부주의한 관리나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화재의 위험이 높다는 것. 특히 연통이 과열되거나 불씨가 연통을 통해 날아 인근 불붙기 좋은 소재에 붙는 화재 발생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작년에는 집안에 사람이 있었는데도 불이 난 것을 늦게 발견해 지붕의 반을 뜯어내고 불을 끈 일도 있었다. 젖은 천정을 교체하고 지붕을 수리하고 보일러실을 정비하는 것도 노부부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만큼 초기진화가 중요하다는 뜻. 산불감시원도 아니고 소방대원도 아닌 우체부가 업무 중에 세 번이나 화재진화작업에 참여해 재산피해를 막은 일이 지역의 미담사례로 잔잔하게 퍼지고 있다.

조성근 씨는 "뭘 그걸 가지고 그러느냐"라며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술회한다. 집집마다 방문하는 직업이니 확률이 높다고 해도 세 차례나 남의 재산을 지켜준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한 의용소방대원은 "의용소방대도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데 초기에 출동하지 못하면 화재진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라며 "그만큼 초기에 대처를 잘 한 것이고 이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주의력이 좋다는 뜻 아니겠나"라고 조성근 씨를 추켜세웠다.

잠깐 앉아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도 무척 부끄러워했다. 이웃에 대한 애정이 눈과 귀를 열고 즉시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겠냐며 묻자 고개를 돌렸다.
마침 옆에 서 있던 동료 우체부는 "진안의 자랑이자 우체국의 자랑 아니겠나?"라며 "훌륭한 미담사례고 널리 알려 이웃에 관한 관심과 사랑을 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조성근 씨는 그냥 살짝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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