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홍 정천우체국장

얼마 전 아내가 기어이 휴대폰을 샀다.
초등학생들도 흔히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것이 일상인데, 용하게도 아내는 휴대폰이 없이도 잘 버텨왔다. 요즘에 휴대폰이 없으면 8급장애인라고 까지 말하는 세상이고 보면, 휴대폰 없이 지내온 아내가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하다. 참가신청서나 직원주소록에도 일반전화번호 보다 휴대폰번호를 적는 것이 일반화된 실정에서 아내의 경우 언제나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전주에 가족과 함께 나가서 서로의 일로 헤어져있을 때에도 항상 나는 아내가 공중전화로 하는 연락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서 아내는 가족상봉을 위해 귀하디귀한 공중전화를 찾아 시내를 이리저리 헤매야했던 것이다.
그러던 아내가 드디어 디지털 세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가 지닌 문화적 차이를 말할 때마다 ‘결핍에서 오는 낭만’이라고들 말한다. 이를테면 편리함의 이름으로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빨라지고 개인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폭넓게 늘어난 디지털 시대와는 다르게, 아날로그 시대는 무언가 부족하고 불편함에서 오는 느긋함 때문에 오히려 낭만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희미해져가는 그 여유와 낭만적 모습이 바로 자석식 전화에서 향수처럼 회상된다. 열심히 손잡이를 돌리고 수화기를 들면 교환아가씨가 나오고 상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연결되기를 기다렸던 그 시절의 정경이 이젠 전설이 되어 버렸다고 할까. 길을 가다가 행여 공중전화에 동전이 남아 있으면 얼마나 반가웠던가? 그리운 사람의 음성을 한 번 더 들을 수 있는 행운이 왔으니 말이다. 가족들 몰래 애인과 전화하기위하여 추운 겨울밤에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소곤대던 기억들, 그것도 모자라 목소리로 다 담지 못한 마음은 남겨두었다가 글로 편지로 전하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기다림과 절제를 전제로 한 소통방법이었다.
하지만 휴대폰의 등장은 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언제 어디서나 리얼타임으로 바로 연결 해주는 유비쿼터스의 세상을 만드는데 휴대폰의 활약상이 눈부시다. 휴대폰이 전화통화뿐만이 아니라 음악 감상, 사진 찍기, TV보기, 이메일 보내기, 금융업무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가지고 있다. 기다림의 징검다리를 4차선 고속국도로 바꿔버린 휴대폰에게 우리들을 환호의 박수를 쳐야할까?
어느 시민단체에서는 한 달에 한번 ‘휴대폰 끄기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휴대폰이 없는 무소유의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의도일 것이다. 그리하여 소유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소유하고, 접촉하고 싶은 것들은 기다림 없이 이을 수 있는 편리한 환경이 과연 우리들에게 준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어린왕자가 만났던 여우와의 관계를 휴대폰을 통해서 가능해 질수 있을까? 휴대폰이 소통의 매개체가 아닌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전락하지나 않았나? 한번쯤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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