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산의 맥을 이어 우뚝 솟은 석가봉 남쪽 기슭에 도라계곡 옥계수가 도란도란 속삭이며 흐르는 나즈막한 언덕에 옹기종기 정답게 모여 앉은 장등마을!이곳에 나의 증조부님께서 터를 잡으셨고 할아버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내가 태어나 한평생의 희노애락을 수놓았던 초가삼칸.앞마당 돌담밑에는 작은 꽃밭에 봄을 알리는 개나리꽃이 자태를 뽐내고 여름이면 봉숭아, 맨드라미 사이로 돌담에 기어오른 나팔꽃이 아침을 반기며 낙엽지는 가을이면 찬서리속에 곱게 피어나는 국화향기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보는 고향집에서 가화만사성을 가훈으로 조상님을 숭배하고 가족사랑을 소중히 하며 근면성실과 수소명덕(守素明德)을 삶의 지표로 살아왔다.다정한 이웃과는 한줌의 소채를 나누고 무거운 짐 하나를 들어주는 끈끈한 정을 다지며, 향약을 바탕으로 후손에게 물려줄 자랑스런 고향만들기에 노력했다.또한 이웃끼리 상부상조하면서 봄이면 진달래 향기속에 씨앗 뿌리고 여름이면 비지땀 참아내며 오곡을 꽃 피웠고, 가을이면 풍성한 수확의 기쁨으로 풍년가의 흥겨운 가락이 넘쳐나고 함박눈 내리는 겨울밤에는 박씨네 고사떡, 김씨네 제사떡으로 야참을 즐기며 내일을 설계하고 밤이 깊도록 덕담을 나누는 아련한 추억들이 쌓인 소중한 고향.하지만 그 고향을 용담댐 수마에게 송두리째 빼앗기고 이곳 낯선 땅에 밀려온지 어언 다섯해를 보내면서 가슴 깊이 파고드는 향수에 끌려 불편한 몸, 지팡이에 의지하고 고향마을을 찾아 보았다.고향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고 푸른 물결만 일렁이니 메어지는 가슴 달랠 길 없어 고향언덕에 덥석 주저 앉아 떨리는 손 끝으로 고향을 허공에 그려본다. 고향, 고향, 고향, 쓰고 또 써 볼때 소리없이 흐르는 두줄기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무향(無鄕)의 서러움을 길고 긴 한숨에 실어 허공에 묻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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