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주천면민 화합의 날 행사

안 그래도 뜨거운 운동장 열기가 주천면 주민의 함성으로 더욱 달아올랐다. 하루종일 주천 초등학교 안은 구수한 음식냄새와 함께 왁자지껄한 정담으로 가득 찼다. 목청껏 소리내어 응원하는 모습은 그 옛날 어린 시절 운동회를 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지난 2일 주천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500여명의 출향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51회 주천면민 화합의 날 행사가 열렸다. 박찬복(46) 재경 주천면민회장은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부터 100여명의 출향인들을 이끌고 고향을 찾았다.

“어려웠던 기억들이 참 많았어요.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버스 안에서의 기억, 친구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버스를 놓쳐 2시간 가까이 걸어가던 기억들까지. 고향이 그립고, 고향에 있는 부모형제와 친구들이 그리워 찾아왔어요.”

 

박회장은 “최연소 재경향우회장으로서 변화하는 향우회를 만들겠다”는 각오와 함께 “고향분들이 건강하고 계속해서 이웃간에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99년, 경찰공무원을 퇴직한 고방원(66)씨도 모처럼 고향을 찾아 고향 자랑에 한창이다. 이런 고향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내심 고맙다는 고씨는 주천면 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김곤진씨와 봉사활동을 통해 대통령표창을 받은 김영갑씨에게 “고향을 발전시키는 힘이 되고 있다”며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이날 행사를 통해 주천면 주양리 김문수(59)씨가 진안운장산 고로쇠축제의 성공적 개최와 복분자, 표고작목반 육성을 통한 주민소득증대에 기여한 공로로 면민표창을 받았고, 괴정마을이 마을표창을 받았다. 또한 103보병연대 7733부대 1대대(대대장 박종호)가 수해피해 복구지원에 도움을 준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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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과정이 다 묻어있어”

주천면민 화합의 날 행사장에서 만난 조주행 할아버지


행여나 이번 체육대회가 마지막으로 지켜보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서서일까? 올해로 51회째를 맞은 주천면민 화합의 날 행사를 운동장 한켠에서 바라보는 조주행(83, 주천면 주양리) 할아버지의 눈망울이 붉게 물들었다.

 

62년 전이었다.

1945년, 일제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이 주민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

“일본놈들에게 36년을 매달렸지. 언제 끌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세월을 지나 해방을 맞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때 해방기념으로 처음으로 체육대회를 열었어. 일본놈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연 행사인데 얼마나 좋은 일이여.”

조주행 할아버지의 기억속에는 한창 팔팔하던 22살, 그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날씨가 참 더웠었지. 해방의 기쁨때문인지 사람들이 참 즐거워했던 기억이나. 지금은 텅 비어보이는 운동장이지만 그때는 사람들로 가득찼었어. 지금은 그때에 비해 10분의 1도 안되는 것 같아. 씨름경기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무거운 모래가마니를 들고 운동장을 참 열심히도 뛰었지. 나도 한때는 모래가마니를 들고 우승한 적이 있어.”

해방의 기쁨과 함께 시작된 주천면민 화합의 날 행사는 6.25가 터지며 위기를 맞았다.

 

“밤은 인민군, 낮은 한국군의 세상이었어. 밤낮을 가지지 않고 싸웠지. 그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죽었어. 동네가 아주 망했었지. 그리고 다시 사람들이 모였어.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의 죽을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다시모여 체육대회를 열였어. 해방 후 모였던 그때의 기분 그대로였지.”

 

조주행 할아버지에게 있어 주천면민 화합의 날 행사는 삶의 과정 그 자체였다.

인민군들의 시체를 치워가며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9남매를 키워낸 그였지만 62년 전 그 느낌 그대로 한결같이 주천면민 화합의 날 행사를 지켜온 그였다.

 

“이제 몸이 예전같지 않아. 내년에도 지금처럼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어. 어렵게 지켜온 행사야.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켜 주었으면 좋겠어.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운동장 한 가득 사람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고.”

우울했던 기분도 잠시. 조주행 할아버지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의 환호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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