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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욕망 사이에서 피어나는 평화의 시그널
서경석 작가·재경군민회장
2018년 05월 29일 (화) 14:16:33 진안신문 webmaster@janews.co.kr

오늘도 세상은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며 내는 파열음으로 시끄럽다.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할 때만해도 이제는 정말로 핵무기 공포에서 벗어나는구나, 드디어 남북 분단의 비극을 넘어 평화통일의 거보를 내딛게 되는구나,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전쟁 종식의 위대한 그날을 현세에 보게 되는구나.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며 가슴 뭉클한 감동에 떨지 않은 자 뉘 있었을까.
오로지 핵무장만을 유일의 가치로 여기며 광분하던 북한이 갑자기 핵을 포기하겠다고 한 것은 물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탓이다. 끝까지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리라 믿었던 중국까지 가세한 완벽한 경제 제재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을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 자칫 내부로부터 붕괴될 수 있는 확률이 커질 법한 상황에 김정은인들 어찌 급하지 않았겠는가.

여하튼 우리는 아무런 변수 없이 북·미간 정상회담까지 이뤄지고, 핵무기 완전폐기와 함께 종전 선언까지 이어졌으면 했다. 그런데 김정은이 시진핑을 두 차례 만나더니 돌연 태도가 달라졌다. 한 번 만났을 땐 트럼프와 정상회담 전에 히든카드를 마련하는구나, 안전판 없이 노회한 트럼프를 만나기는 껄끄럽겠지 했다. 그런데 두 번 만나고 나서는 남·북간 고위급 회담도 거부하고 판을 깰 것 같은 분위기로 돌아섰다. 한미연합 공중훈련인 '맥스선더'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국회 강연이 그들의 심사를 불편하게 했고, 미국의 존 볼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의 발언이 속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비핵화 이행은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 테네시 주의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비핵화는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시설 위치를 모두 공개하고 개방적인 사찰을 허용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보상에 착수하기 전에 PVID(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영구적이고도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완전한 비핵화)가 완료돼야 한다."는 것이 바로 볼턴의 발언 내용이다.

완벽하게 삭초제근한 후에야 보상을 하겠다는 얘기. 우리 남한 입장에서야 쌍수를 들어 환영할 발언이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보면 날갯죽지는 물론 목까지 비틀어 움쩍달싹할 수 없게 만든 후 보상을 해도 하겠다는 얘기이니 심통이 날 수밖에. 천신만고 끝에 만든 핵을 포기하는 것도 원통할 일인데, 모든 걸 다 내어준 후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으니 몸을 사린 것이다.
앞서 리비아가 경제 제재의 코너에 몰리자 핵을 포기한 후 미국과 수교를 이루었지만 결국 이슬람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카다피는 사살됐다. 그 같은 전례는 '선 핵폐기-후 정권교체'라는 등식을 만들었고, 김정은은 이 부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핵은 북한이 살아남기 위해 만든 최후의 카드. 북한에 핵이 없다면 세계열강들이 거들떠나 보겠는가. 그나마 주목받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핵 때문 아니겠는가. 그런 비장의 카드를 버리겠다고 나선 북한의 처지를 우리는 인류애적 차원에서라도 한번쯤 짚어봐야 한다.

자고로 먹고 사는 것만큼 엄숙한 건 없다. 핵무기 구축 목적은 백두혈통 유일체제 유지를 위한 것이었지만, 살기 위해 먹을 것과 맞바꾸겠다고 나선 이상 우리는 관용으로 안아야 한다. 그들이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은 협상에서 좀 더 챙기겠다는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풍계리 핵시설 폐기 현장에 우리측 기자단을 거부했던 그들이 급거 미국으로 날아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을 보며 번복한 것이 그 반증이다. 그들이 정말 판을 깰 요량이었다면 풍계리 핵시설 폐기 계획도 아예 없던 일로 만들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체제 보장과 한국 수준의 경제 성장"을 언급했다. 백두혈통 유일체제 보장과 한국수준의 경제발전이란 두 개의 축은 왠지 구조적 모순이 느껴지지만, 그것은 나중에 고민할 일이다.
일단은 통일의 초석을 놓고 볼 일이다. 북한이 유일체제 보장을 전제로 한 이상 통일이 쉬이 될 수는 없다. 서로 왕래하며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한반도에 봄날은 오는 것이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급한 건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북한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뱀도 허물을 벗어야할 때 벗지 못하면 죽듯, 세상 만물은 변화의 때에 맞춰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사유의 변화 과정을 변증법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한다. 하나의 관념이나 사상이 형성되어 무르익는 단계가 정(正)이고, 이 단계에 모순이 내포되어 있다가 드러나는 게 반(反)이다. 정과 반이 갈등을 빚다가 서로 공존을 꾀하는 단계가 합(合)이다.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는 이러한 헤겔의 변증법에 유물론을 결합하여 유물사관을 만들었다. 자본주의는 뛰어난 생산성을 자랑하지만 빈부 격차라는 모순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자본주의는 고로 이러한 모순이 표출되어 결국 사회주의로 나아가리라는 예언을 남긴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먼저 붕괴되었다. 자본주의의 빈부격차라는 모순보다 공산주의가 안고 있는 생산성 부족이 더 치명적이었다는 결론이다.
중국과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것에서 이미 증명이 되었다. 그들이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웅변 아닌가.

북한은 더 이상 몽니 부리지 말고 남한이 손잡아 주고 미국이 거들어줄 때 확실하게 변화의 바람을 타야 한다. 남한은 보다 너그러운 자세로 북한의 변화를 도와야 한다. 다행히 잘 참을 줄 알고 균형감각을 갖춘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파트너가 되었다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행운이라 할 것이다.
인유선원 천필종지(人有善願 天必從之)라고 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하늘은 반드시 그 뜻을 들어준다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가 국가와 사회, 인류에 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만큼 하늘은 분명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도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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