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궁초등학교 31회 동창회

오랜 명장도 나이와 세월은 거꾸로 거스를 수 없다. 얼굴에는 진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오는 지천명(知天命). 희끗한 머리칼을 애써 감추려 해도 가릴 수 없는 나이.
성수면 외궁초등학교 제31회(회장 이평원) 동창생이 본교를 찾았다. 지난 1일 일요일 몹시도 강한 황사바람이 공중을 가득 채우고 안개 낀 거처럼 시야를 가렸지만 이들에게는 장애요소가 될 수는 없었다.
본교를 찾은 동창생들은 전세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교정을 거닐며 옛 추억을 찾기위해 분주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변해버린 모교의 모습은 졸업생들에게 낯설음으로 다가왔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어린 시절 추억이 어려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한 노력은 자연스러운 옛 추억으로 녹아들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 모습과 전혀 달라 보여요. 목조 건물에 깨어진 창문 사이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곳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지금은 도시 학교보다 더 좋은 시설이 되어있네요.”

이 당시 학교를 다녀본 학생은 목조 건물에 나무 바닥 그리고 나무 책상과 의자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러 농촌 학교의 모습을 현대화로 바꿔놓았다.
중년이 되어서야 모교를 찾은 동창생들은 한결같은 말이 감회가 깊고 세월의 변화가 무쌍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교실과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추억을 찾기라도 하는 듯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모교의 본연의 모습은 지워졌지만 그 향수만은 아직 졸업생들의 코끝을 자극한 듯 했다.

전국 각 지역에 살고 있는 동창생들을 가운데 제31회 동창생 이평원(51·전주 으뜸 보석 공방) 회장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당시 외궁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1개 반뿐이었죠. 그래서 동창생들은 입학하면서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어요. 오랫동안 잊고 지낸 친구들과 동창회를 2년 전에 시작했지만 같은 반 친구들이기에 변함없이 만나고 또 만날 수 있는 것이죠.”

살고 있는 지역은 다르지만 동창생들은 경기도부터 땅 끝 마을까지 찾아다니며 동창회를 연결해 교류의 끊을 놓지 않고 있다.
서울에 살면서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고 성수면에서 아주 골짜기에 살았던 도통리 음수동 김순자씨, 집이 가까워 점심시간에 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녔다는 김옥자씨, 성수면 우체국 옆에서 농기계 수리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이완규씨, 마령면에서 이용원을 운영하는 임채운씨, 마산 내서읍에서 동창들을 위해 전날 올라온 양도순씨, 당시 300원을 들고 서울로 상경한 김광복씨 등 30여명 참석해 동창회가 시작되었다.

◆친구야 얼굴보니 좋구나!
동창생들은 지난 1일 외궁초등학교 급식소에서 장만한 음식으로 점심을 먹으며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눴다.
점심을 마친 동창생들은 모교 강당에서 배구와 고향 집을 찾아 방문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정들었던 교정에서 추억을 한 아름 담았다.

이어 이들은 마이산으로 이동해 탑사에서 북 마이산까지 거닐며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었다.
이날 참석하지 않은 동창생들에게 김옥자씨는 많은 참여를 부탁했다.
“동창생들이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다음에는 꼭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모교를 졸업하고 30여년이 지나 50대에 접어들면서 친구들 얼굴 한번 보고 싶어요. 친구들아 신문 보면 다음에 많은 참석 바란다.”

김순자씨는 처음 동창회 모임을 마련했을 때 몸에서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가슴이 벅찼다고 한다.
“동창회 소식을 듣고 처음 친구를 만나기 위해 만남의 장소로 갔어요. 그런데 친구 얼굴을 모르겠더군요. 나눠준 명패를 보고서야 너 누구야~ 나 누구야~ 하며 알아보았죠. 전율을 느껴졌죠. 친구들과 만남이 참 좋아요. 다음에 만날때까지 친구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임채운씨는 “친구들을 만나니까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났는데 너무 많이 변했더군요. 친구들을 만나고 보니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아요. 참 좋습니다.”라고 감회를 말했다.
김광복(서울 목동)씨는 어느 날 갑자기 지게를 논바닥에 팽개치고 서울로 상경했던 지난 이야기를 웃으며 말했다.

“주머니에 300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갔죠. 그 당시는…. 서울에서 버스요금이 20원 할 때예요. 당시 삼양 닭고기 라면이 20원 했죠. 라면의 원조고요. 이때 일당이 100원 이었죠. 참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아요. 친구들아 만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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