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이야기(18) 진안읍 오천리(3) … 저릿골, 동구점

오천리의 몇몇 자연마을은 이제 기록으로만 남았다. 그리고 남아 있는 마을 가운데에도 작은 마을은 하나 둘 주민들이 떠나 조만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고향을 지키고 가꾸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평생 땅을 일구며 하늘의 섭리대로 살아온 사람들은 세상의 모진 풍파에서 조금 떨어져 나름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 찾은 저릿골(석동)과 동구점(동구지미)은 국도 26호선 줄기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마을이다. 동구점은 그나마 버스정류장이 있어 위치를 알 수 있지만, 저릿골은 아무런 표지판도 없었다.

▲ 저릿골의 모습. 지금은 한 집만 사람이 살고 있다. 본래 저릿골 위치는 산 쪽으로 더 들어가야 한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더 들어가면 오릿골(오르골)이 나온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라졌다고 한다.
◆사람 떠난 저릿골
저릿골은 원촌에서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 교량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보이는 비포장 경사길로 가야 한다. 언뜻 보면 고속도로 공사 차량의 진출입로 같아 보인다. 경사를 오르면 길은 왼쪽 고속도로 밑 터널과 이어진다. 터널을 지나면 한참 아래로 집 두 채가 보인다.

저릿골이란 지명은 자리를 깔아놓은 것처럼 생긴 지형에 마을이 이뤄져 붙여졌다. 실재 저릿골은 지금 집이 있는 곳보다 더 산 쪽에 있었다고 한다.
원촌에서 길을 묻다가 들은 바로는 메기를 양식하는 한 집만 살고 있다고 했는데, 아마도 하우스 시설이 있고 마당에서 강아지가 뛰노는 곳이 그 집인 모양이다.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좁은 농로는 두 집이 있는 곳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끊긴다. 산 방향으로 산길이 보이지만 오랫동안 사람의 왕래가 없었는지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기에서 산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장수군과의 경계지역에 오릿골(오르골이라고도 불리는데, 진안향토문화백과사전에 있는 지도에서는 ‘먹뱅이’라고 적어 놓았다.)이 있다고 한다.
  

▲ 작은 동구점 모습이다. 이곳엔 두 집만 살고 있는데, 아래는 황소를 키우는 축사가 있고 위로는 잘 정비된 팜스테이 농장이 있다.
◆전쟁도 비켜 간 동구지미
저릿골에서 나와 국도를 따라 장수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동구점이다. 시내버스 승강장이 있어 마을 진입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진입로 옆에는 팜스테이 농장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판이 있다.
일단 팜스테이 농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을 진입로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들어 가는데, 산 중턱에 황소 여러 마리가 모여 있는 축사가 있고, 그 위쪽 길 끝에 보기 좋게 정비된 농장이 있다.

이곳은 예전부터 ‘작은 동구점’이라고 불렀다. 동구지미와 산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데, 편의상 그렇게 불렀던 모양이다.
작은 동구점을 살펴보고 다시 동구지미로 향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크지 않은 낡은 집 여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국도에서 멀지 않지만 한참 떨어진 느낌이다. 마을 앞으로는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 교량과 국도, 원촌이 보인다. 하지만,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는 게 이 마을이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당시 빨치산들도 이곳에 마을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나쳤다고 한다. 그 덕에 마을은 큰 재난 없이 무난하게 지낼 수 있었다.
  

▲ 지지난해 수해로 부서진 천주교 공사 자리에 성모 마리아 상이 남아 있다.
◆수해로 부서진 천주교 공소
마을 한가운데는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하나가 흐른다. 물길은 석축으로 잘 정비를 해 놓았는데, 수해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물길 옆으로는 흰색 성모 마리아 상이 외로이 서 있다. 성모 마리아 상이 서 있는 콘크리트 기단에는 누군가 새겨 놓은 ‘1990. 11. 5’라는 글귀가 선명했다.

그런데 진안군 향토문화백과사전에서 본 동구점 천주교 공소는 찾을 수 없었다. 설마 여기에서 예배를 보는 것은 아닐 터고….

사실 동구지미는 두 해 전에 수해를 입었다. 비가 많이 내리면서 마을 뒤 배나무골(커다란 배나무가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로 물이 모여 흘렀다. 불어난 물은 물길 주변을 쓸고 지나갔는데, 하필이면 그곳에 천주교 공소가 있었다. 결국, 천주교 공소는 절반이 물살에 잘려나갔다. 그나마 다행으로 성모 마리아 상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이곳에서 예배를 보았는데, 공소가 사라진 지금은 승합차에 타고 진안성당에 다녀온다.

동구지미 천주교 공소는 역사가 깊은 곳이라고 주민들은 설명해주었다. 자유당 시절 대학교 학생들은 함부로 이동하거나 모일 수 없었는데, 동구지미에는 빼놓지 않고 농촌 봉사활동을 나왔단다. 학생들은 강당(천주교 공소)에서 강연도 하고, 그곳에서 머물며 농사일도 도왔다. 아마도 지금 마을을 끼고 있는 국도가 나기 전에는 산간 오지였기 때문에 경찰도 이 마을엔 자주 올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 동구지미에 있는 낡은 창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여섯 집 남은 동구지미
30년 전만 해도 동구지미엔 서른 가구 이상이 살았다. 물론 젊은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섯 집만 남았다. 물론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이 마을 역시 오천리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각성바지다. 오천리가 예전부터 방고개(방곡재, 율치)를 기점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서 그런 모양이다.

이 마을은 예전에 고랭지 채소가 잘 되던 곳이었다. 그런데 점점 시장 가격이 내려가 지금은 고추 농사를 많이 짓는다. 하지만, 올해는 고추가격이 많이 내려가 주민들의 걱정이 크다.
배나무골 고추밭에서 일하던 김두석(68), 오순예(70)씨 부부와 일을 도와주는 배금순(74)씨를 만났다. 새참으로 찐 감자를 먹고 있었다. 이들은 기자에게 감자를 건네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아요. 농사가 잘되면 가격이 내려가잖아요.”
찐 감자는 아주 맛있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구수한데다가 뱃속까지 든든해지는 느낌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 마을이 경사가 급해서 농업용 기계를 사용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품이 많이 드는데, 노인들만 남아있으니 갈수록 힘이 들죠.”
 

▲ 마을 뒤쪽에 있는 낡은 정자. 오랜 기간 사람들의 발길이 없었는지 많이 부서졌다.
◆수해 상처 아물지 않아
수해가 난 뒤 복구공사가 진행됐다. 배나무골 위쪽은 치수 시설을 세우고, 기존에 있던 농로를 끊어 막아놓았다. 비 피해를 막겠다는 의도였지만, 정작 주민들의 경작활동은 크게 제약을 받게 됐다. 길이 막혀 경운기는 물론 사람도 갈 수가 없어 안쪽에 있는 밭은 이제 경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을 오른쪽의 또 다른 골짜기 역시 복구공사가 주민들 필요에 맞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큰 물길은 폭을 넓히고 콘크리트를 쌓아 복구를 했지만, 작은 물길은 손을 데지 않았단다. 그래서 작은 물길을 건너 밭으로 가야하는 주민들은 한참 애를 먹어야 했다.
물론, 부서진 천주교 공소를 다시 세우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 그릇(옹기)을 만들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옹기점', '동구점', '동구지미'라는 지금의 지명이 나왔다.
◆솥 만들던 동구지미
동구지미라는 마을 지명은 ‘옹기점’에서 왔다고 한다. 예전에는 ‘옹기점’이라고도 불렀단다. 지명 그대로 그릇을 만들던 곳이 이 마을에 있어 그렇게 불린 것이다.
주민 설명에 따르면 동구지미에서 장수방향으로 가다 나오는 첫 다리를 건너 오른쪽이 그릇을 만들던 곳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이니 그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곳이 상인들의 왕래가 잦았던 곳인데다가 멀리 경상도 상인들도 거쳐가던 곳이었으므로 분명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행위가 성행했을 거라는 짐작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 고추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김두석, 오순예씨 부부와 일을 도와주는 배금순(왼쪽)씨. 아침 참으로 달콤하고 구수한 감자를 먹고 있었다. 김두석씨는 마을의 역사와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구수한 감자를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만, 올해 고추값이 많이 떨어져 많은 걱정을 하는 김두석씨의 모습을 보며 농촌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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