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이야기(33) 안천면 백화리(1) 도라마을

▲ 마을약도
안천면 백화리(白華里)는 본래 용담군 이북면 지역이었다가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중화리(中和里), 이현리(梨峴里)와 무주군 부남면 교동(校洞) 일부를 병합한 뒤 안천면에 편입됐다. ‘백화’라는 이름은 마을 북쪽 지선봉 연못가에 배나무가 울창하여 ‘배실’이라고 불리다가, 흰 배꽃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백화리는 도라(도래실), 상리(상배실), 중리(중배실), 하리(하배실), 구례(구레말), 율현(밤고개) 다섯 행정리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새해 첫날 도라(桃羅)마을을 찾아갔다. 기록에서는 이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복숭아를 늘어놓은 형국이라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야생 복숭아나무가 많아 ‘도라’라는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도 말했다.
현재 11가구에 주민 30명이 살고 있다.

▲ 도라마을 모습
◆커다란 절이 있던 마을
도라마을은 백화리의 다른 마을과는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진다. 상리, 중리, 하리가 나란히 위치하고, 국도 건너편으로 구례와 율현이 눈에 보이지만 도라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중리에서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가야 비로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도라마을이 나온다.

이 고갯길은 10여 년 전에 닦았다고 한다. 당시 군에서 해발 400m에 달하는 도라마을을 고랭지채소 재배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채소 반출을 위한 용도로 도로를 낸 것이다. 처음엔 군의 의도에 맞춰 도라마을에서 고랭지 채소 재배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노인이 대부분이어서 농사를 짓는 집이 거의 없다.

고갯길은 도라마을 앞에서 넓은 공터와 함께 끝났다. 아래쪽으로 좁은 길이 이어지지만, 한동안 자동차 통행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도로 끝 넓은 공터는 하루 세 번 버스가 들어와 돌아나가는 곳이다. 이곳 고갯길 끝 공터는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도로를 내면서 땅을 파헤치자 주민들에게도 낯선 기와가 잔뜩 나왔다. 도라마을이 인근 다른 마을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높은 해발을 감안하면 충분히 큰 절이 있을 법했다.

▲ 진대산 이장이 가마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안내했다.
◆그릇과 종이 나던 곳
도라마을에는 그릇을 굽던 가마터가 지금도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 마을 뒤쪽 밭에 쌓아놓은 돌을 보면 불에 그슬린 돌을 볼 수 있는데, 옛날에 가마에 사용했던 돌이라고 한다. 이것을 조사하기 위해 몇 년 전 군산대학교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마을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가마터가 있던 곳만 유독 흙이 차지다고 하는데, 도라곡이 무주군과 접해있고 금산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로 봤을 때도 그릇생산이 크게 흥했을 거라 짐작된다.
그리고 도라마을에서는 품질이 아주 우수한 한지도 생산했다고 한다.

작은도래실이라는 곳에 종이를 생산하는 ‘지소’라는 곳이 있었는데, 최근까지 한지를 생산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한 한지는 전주 등 한지로 유명한 곳의 그것과 비교해 품질이 더 우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지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자 결국 지소는 문을 닫았다. 한지를 만들던 송병권씨는 도라마을에서 나와 중리마을로 이사했다.

▲ 안천면 백화리 도라마을
◆먹고살기 괜찮았던 마을
도라마을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크게 풍요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먹고 살만 했다. 마을 주변 산 중턱까지 개간해 농사를 지었고, 경사지를 개간하기 위해 다랑이 논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농지 대부분이 묵고 있다. 고령인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할 수 있는 주민들은 많지 않은 농지에서 자기 집에서 먹을 것만 조금씩 농사를 짓고 있다.

이런 마을의 현실에서 돌파구로 생각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농촌체험마을로 마을을 변모시키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지금 비어 있는 흙집을 고쳐 도시 사람들이 묵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특히 도라마을은 주변 자연환경이 아주 깨끗하고, 대전과 1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귀농자들이 꿈꾸는 마을
마을 초입은 비어있는 낡은 흙집 몇 채가 지키고 있었다. 한 집은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마침 외출중이었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마을회관 근처에 모여 산다. 마침 마을회관 바로 앞이 진대산(47) 이장의 집이어서, 진 이장으로부터 마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마을 위치나 농지 규모 등을 봤을 때는 주민이 얼마 안 되는 마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다른 자연마을과 비교했을 때 그리 작은 마을은 아니었다.

이것은 마을에 공직에서 물러난 퇴직자와 귀농자가 아주 드물지만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시로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와 집터와 농지를 구하고는 있지만, 소유자들이 팔지 않아 본격적인 귀농이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

“예전부터 우리 마을엔 대가족이 많았어요. 지금도 순덕이네가 여섯, 일곱 명인 집도 있고, 우리 집만 네 명이네요. 이렇게 세 집이 인구 절반이 넘네요.”
진 이장이 허허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전에는 참 사람도 많고 북적거렸던 마을이었고, 지금은 많은 주민이 떠났지만 사람 수로 본다면 작지 않은 마을이라는 게 진 이장의 이야기다.

▲ 마을의 비어있는 흙집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얘기가 있었다. 도라마을 특성상 빈집을 고쳐 농촌체험마을로 가꾸는 방안이다.
◆나이 70은 아직 젊은이
도라마을은 예전부터 장수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집마다 90세를 넘긴 노인들이 많았다고 하니 알 만하다. 지금도 마을엔 80세 이상 노인들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나이 70은 마을에서 젊은이에 속한다.
“우리 마을에 진안군 최고령 노인이 살고 있어요. 마을회관 앞 컨테이너 집에 살고 계시는데, 지금도 빨래와 밥을 직접 하실 정도로 정정하세요.”

도라마을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좋은지의 방증일 것이다. 한겨울에도 볕이 잘 드는데다 사방이 산이어서 바람도 적다. 그리고 청정 자연환경이 주민들이 장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을에 귀농자들이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 없는 여건이 안타까울 뿐이다.

▲ 원시단 할머니와 셋째 딸 한민순씨.
지난해 7월 우리 고장 최고령이자 전북지역 최고령자로 알려진 윤정안(백운면) 할머니가 108세의 생을 마감했다.
그 후 우리 고장 최고령자는 도라마을에 살고 있는 원시단(104세) 할머니이다.

사실 원시단 할머니는 장등에서 살았다. 일찍 혼자 되고 홀로 6남매를 어렵게 키웠다.
그러다 용담댐이 생기고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셋째 딸 한민순(77)씨가 있는 도라마을로 이사했다. 현재 마을회관 앞 작은 컨테이너 집이 원시단 할머니의 집이다.

한민순씨와 원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갔다. 원 할머니는 방 한쪽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곱게 빗어넘긴 흰 머리와 단정하게 차려입은 옷차림. 피부도 104세라는 나이를 잊은 듯 고와 보였다.
원 할머니는 지금도 직접 빨래를 하고 밥을 지을 정도로 건강하다. 지금껏 큰 병을 앓아 본 적도 없고, 약도 거의 먹지 않는다. 가끔 우황청심환 하나를 먹는 정도다.

그래도 자식네가 함께 살자고, 도시에 나간 아들이 도시에서 살자고 졸라도 원 할머니는 여기가 좋다며 떠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조금씩이라도 일을 하며 지내는 것이 어쩌면 장수의 비결인 모양이었다.
“지금도 사흘에 한 번 머리를 감을 정도로 건강하고, 멋도 아시는 분이에요.”

귀가 어두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려워 한민순씨가 대부분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민순씨는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말을 이어갔는데, 건강한 어머니의 모습이 고맙기만 한 것 같았다.

“우리 어머니는 신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은 찌개를 잘 드시고요. 소고기와 닭볶음탕도 잘 드세요. 주로 고기류를 좋아하세요. 그런데 요즘엔 입맛이 변하셨는지 명태국을 해 드리면 잘 먹었다고 하세요.”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원 할머니가 “고마워요.”라고 계속 말했다. 기자가 찾아와 준 것이 고맙고, 지역에서 신경을 써주는 것이 고맙고, 딸이 옆에서 챙겨주는 것이 고맙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는 만날 고맙다고 말씀하세요. 지금은 거동이 불편해 교회에 가지 못하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세요. 그래서 늘 하나님 덕이라고 생각하면서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오신 것 같아요.”

▲ 안천면 백화리 도라마을

 

▲ 안천면 백화리 도라마을

▲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 왼쪽부터 원족계(92), 성경순(87), 박정례(73), 한민순(77)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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