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인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모습들
3년차 귀농인 부귀면 송완선

현재 귀농인의 삶을 살고 있는 송완선 씨. /사진제공_송완선 씨
현재 귀농인의 삶을 살고 있는 송완선 씨. /사진제공_송완선 씨

3년 차 귀농인 송완선(35) 청년은 부귀면에 살고 있다.
부귀면은 송완선 씨에게는 조금 특별한 동네이기도 하다.
송 씨는 부귀면을 이렇게 회자한다. 
"부귀면은 증조부께서 터를 잡으시고 아버지의 고향이시기도 하다. 그래서 어릴 때 할아버지 댁이니깐 자주 왔었고 저에게는 친근하고 추억이 많이 담긴 동네"라고.

이어 "그래서 저는 다른 귀농·귀촌인들에 비해 조금 편한 케이스다"라며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분들도 부귀에 거주하고 계시고 조부께서 지역에 워낙 일궈놓으신 것이 많아 기본적인 터전이 잡혀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귀농·귀촌인들의 많은 고민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지역민들과의 융화와 관련된 것이다.

이에 송 씨는 "그래서 저는 '귀농·귀촌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을 못 한다"라며 "귀농·귀촌인들의 가장 어려운 고민이자 단계를 조부님과 가족들 덕분에 수월하게 넘어간 상태이며 이것을 비유하자면 귀농·귀촌인의 '낙하산' 정도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송 씨는 본인을 '낙하산'이라고 비유했지만 기존의 삶의 터전과 방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귀농·귀촌을 결심하여 실행까지 옮기기에는 매우 큰 각오와 노력이 필요했다.
귀농인 송완선 씨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곳 진안에 정착하게 됐을까?

◆얽매여 있는 삶을 그만두다
송완선 씨는 전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군 전역까지 전북권역을 벗어난 적이 없는 토종 '전북인'이다.
또한 송 씨의 과거 직업은 군인. 특전사로서 나라를 지키고 해외 파병도 다녀왔다.
송 씨는 "원래는 어릴 때 무릎을 다쳐서 병역 '면제'를 받은 바 있다"라며 "하지만 조부님께서 군대를 꼭 다녀오면 좋겠다고 일러두셨고 이왕 다녀오는거 '특전사'로 장교지원을 해 군대를 다녀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 파병을 다녀온 것도 조부님의 영향이 크다"라며 "조부님께서는 '우리나라가 옛날에 어려웠을 때 외국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다른 나라를 도울 줄 알아야 한다'라고 일러두셨고 마침 아프리카의 남수단에서 해외 파병의 기회가 있어 다녀왔다"라고 덧붙였다.
그만큼 송완선 씨에게 할아버지는 큰 존재였으며 가장 따르고 존경하던 존재이기도 했다.
그리고 송 씨의 인생의 전환점이 도래한다. 바로 존경하던 조부께서 상을 당한 것.

하지만 해외 파병 기간이었기에 끝내 장래에 참석하지 못했고 조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이에 송 씨는 "할아버지의 임종을 끝내 지키지 못해 매우 아쉽고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군대를 갔기 때문에 더더욱 남을 이유가 없어졌다"라며 "원래도 얽매여 있는 삶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가 더해져 군 전역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군 전역을 하고 어쩔 수 없이 주변의 흐름에 따라 소방, 경찰 공무원을 준비했다는 송 씨.
송 씨는 "군 전역을 한 사람들이 대다수가 소방,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곤 한다"라며 "결국에 저도 흐름에 따라 하다 보니까 '맞다 나 얽매여 있는 분위기, 집단 때문에 군인을 안 했는데 또 이러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포기하고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송완선 씨는 귀농을 선택한다.

장교 임관식을 가지고 있는 20대의 송완선 씨. /사진제공_송완선 씨
장교 임관식을 가지고 있는 20대의 송완선 씨. /사진제공_송완선 씨

◆마음먹고 2주 만에 내려온 진안
"뭔가 하던 일이 다 잘 안되니깐 숨고 싶어지고 도망치고 싶었다. 또, 한참 코로나 때문에 귀농·귀촌 붐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진짜 딱 귀농하겠다고 마음먹고 2주 만에 정리하고 내려왔다"
그렇게 내려온 부귀면에서 귀농인 송완선 씨의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된다.
귀농을 하고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바로 농사.
첫해에는 수박과 배추를, 두 번째 해에는 엽체류를 추가하고, 올해는 당근을 추가해 다양한 작물을 수확할 예정이라는 송 씨.

농사를 시작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송 씨는 "귀농을 하고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라며 "첫해에 농사를 시작할 때, 부귀의 '김명민'이라는 친구에게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진짜 귀찮을 정도로 연락을 많이 하고 물어보는데 다 알려주고 도와주고 또. 자기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든 주변의 삼촌들 통해서 알려주더라"라며 "명민이 말고도 우리 부귀 청년협의체(가칭) 회원들 동현이, 진혁이 등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감사하다"라고 덧붙였다.
송완선 씨는 도움을 준 사람들과 계속해서 교류를 이어 나갔고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 '부귀청년협의체(가칭)'를 만들었다.

송 씨는 "개인보다는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라며 "아직 단체명이 확정은 아니지만 부귀에 거주하는 청년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교류를 이어 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구성원이 각자 다른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 조직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동그리 농장의 '손동현', 인적 네트워크 및 축산업의 '최진혁', 가장 젊고 가장 큰 농사를 하고 있는 '김명민' 등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인력이 모인 집단"이라며 "더 나아가 이제는 지역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고자 교류를 이어 나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조직된 부귀청년협의체의 지역을 위한 첫 번째 활동이 바로 작년 12월 22일에 부귀면사무소에서 진행된 '부귀에 산타가 왔어요'(▶ 본보 2023.12.26.자 1면 '활기차고 따뜻한 부귀면 되었으면..' 기사 참조)이다.
송완선 씨의 귀농 라이프는 어떻게 보면 전국의 귀농·귀촌인들이 본받아야 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귀농을 하고 본인의 생업을 이어 나가면서 지역민들과 융화되고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지역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는 점이다.

◆받은 만큼 베풀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들은 결코 개인이 이루고자 하는 데에는 한계점이 명확하다.
본인의 노력이 최우선으로 중요하지만, 주변 환경, 즉 행정에서의 적극적인 지원도 함께 해야한다는 것.
이에 송 씨는 "귀농을 하고 많은 이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행정에서의 지원도 많았다"라며 "지금 살고 있는 집 또한 진안군의 빈집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집이다. 또, 청년 창업농이 선정돼 많은 지원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또, 농업기술센터 농업인 육성팀의 김현정 팀장님에게도 정말 감사하다"라며 "그분께서는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지 할 정도로 정말 세세하게 교육 일정이라든지 지원 사업이라든지 또 놓치는 부분이 있으면 항상 알려주시고 더 나아가 김 팀장님 덕에 올해 청년농업인 농산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송 씨가 다른 귀농·귀촌인들과의 비교했을 때, 귀농 생활의 시작점이 다르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송 씨 본인이 지역민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이를 통해 그들과 융화되었다는 점, 행정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 더 나아가 이러한 기반을 통해 지역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점 등 결코 송완선 씨의 귀농인으로서의 노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귀농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한해를 보낸 송완선 씨.

또 현재 귀농인의 생활을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데, "도시에 살 때보다 정서적인 여유가 생긴 점이 귀농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집도 생겼고 하고 싶은 일 하고 먹고 싶은 요리도 직접 해 먹고 친구들과 마당에서 바비큐를 즐길 수도 있고 강아지도 키우고 등 정말 지금의 생활을 만족하고 있다"라고.

이어 송 씨는 "이제 올해는 정서적인 여유가 생겼으니 금전적인 여유도 함께 늘려볼까 한다"라며 "외국인 노동자 사업도 신청했고 농사 규모도 늘려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또 부귀청년협의체 친구들과 함께 지역에 도움이 되는 활동들을 이어 나가면서 제가 도움을 받은 것처럼 도움을 베풀고자 한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3년 차 귀농인 송완선(35) 청년의 진안살이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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