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44 부귀면 세동리 … ⑤우정마을

▲ 내 건너편에서 바라본 우정마을
우정(牛井). '牛亭', '牛丁' 같은 이름도 혼용되기도 하지만,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물 정(井) 자가 들어가는 '우정'이 맞는 것 같다. 소와 우물. 마을 앞에 있는 갈마봉 지세가 '소가 우물을 마시는 형국'이라는 이야기다.

이 마을은 인근 마을과 마찬가지로 1500년경 밀양 손씨가 정착하면서 이뤄졌다. 한 때는 부자가 있는 잘 사는 마을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예닐곱 집만 남아있다. 마을에 들어서 보면 오랫동안 비어 있어 파손된 폐가를 여럿 볼 수 있다.
 
◆돋보이는 느티나무
이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높이와 둘레가 예사롭지 않다. 기록에 따르면 수령 500년, 높이 24미터, 둘레 7.4미터, 면적 36제곱미터라고 하는데, 2등급 군 보호수로 지정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1982년에는 천연기념물 28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무가 늙어가면서 줄기가 썩고 동공이 생기는 등 나무가 기력을 잃어갔다. 그러면서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돼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예사 나무가 아닌 만큼 마을에서는 오랫동안 당산제를 지냈다. 마을과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잔치였다.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섣달 그믐날 밤, 돼지머리와 떡 등을 준비해 이장이 제주를 맡아 제를 올렸다. 그러나 이마저도 1985년경에 나무가 벼락을 맞아 일부 가지가 부러져 제가 끊겼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동공이 생긴 부위에 덮개를 씌워 나무줄기를 보호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나무 아래에는 아주 오래전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정자가 노거수와 잘 어울려 있다. 정자 상량문을 보니 '단기 4292년'. 1959년에 지었으니 50년이 넘었다.
 

▲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느티나무와 50년이 넘은 마을 정자
◆사방이 꽃밭
우정마을에 들어서면 또 하나 돋보이는 게 있다. 꽃이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산과 들에 많은 꽃이 피었는데, 여기에다 마을에서 마을 광장과 진입로 가장자리에 화단을 가꿔놓았다. 그렇게 빨갛고 하얀 꽃은 곳곳에 피어 있는 알록달록한 야생화들과 어울려 독특한 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짙은 녹색 빛을 드리우며 마을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숲이 눈에 띈다. 느티나무와 참나무 등이 장승마을과 부암마을, 곰티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숲을 이루는데, 기록에 따르면 노루목재를 끊는 위치라고 한다.

노루목재를 끊는 위치?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명당이라며 끊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길을 내면서 맥이 잘렸다는 이야기다. 전자의 얘기는 우정마을 주변이 장군대좌, 투구봉, 원수봉, 장검날, 용마봉 등 봉우리가 늘어서 '장수와 장승이 날 명당'이기 때문에 전해진 얘기로 보인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
우정마을을 찾은 날은 마침 '부귀면민의 날' 행사가 있던 어버이날이었다. 그 덕에 마을엔 사람이 없었다. 말 그대로 텅 비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한 노인이 밭에서 머루 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가까이 가 보니 농업통계사무소장, 진안향교 전교 등을 지낸 송상완(74)씨였다.

▲ 마을약도
송상완씨는 진안읍 군하리에 거주하면서 멀리 우정마을까지 나와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마을에 아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집터와 경작지를 조금 사게 됐다. 그리고 퇴직 후에 이 마을에 집을 짓고 지내려다가 마을에 사람이 계속 줄어드는 것을 보며 농사만 짓기로 했다. 집터에서는 머루 나무가 새싹을 내고 있었다.

"농업 관련 기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는데도 농사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아요. 그래서 매번 마을 농민들에게 물어보게 돼요. 그런데 농민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이 사람들이 정말 전문가로구나.'라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농사라는 게 땅을 알고 땅과 대화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제대로 지을 수 있는 것이더라고요." 송상완씨는 우정마을이 참 좋단다.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고, 인심이 후해서 좋다. 다만, 주민 수가 계속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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