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49 진안읍 반월리 … (4)솔안마을

▲ 솔안마을 약도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보면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솔안마을을 찾았던 6월 12일이 그랬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멀리 있는 산도 또렷하게 보이는 화창한 초여름.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조차도 상쾌했다.

원반월 마을 숲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시내버스 한 대가 좁은 길을 능숙하게 나아간다. 그 뒤를 좇아 살살 나아가니 키 높은 나무가 일렬로 서 있다. 병풍처럼 늘어선 나무 덕에 멀리에서는 그 뒤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숲 뒤로 돌아가 보니 주택 몇 채가 모인 곳이 보인다. 나지막한 언덕을 끼고 있는데 주택이라고 해야 여섯 채가 전부다. 그 가운데에는 사람이 오랫동안 살지 않아 허물어진 것도 보인다.
 
◆네 가구 모여사는 마을
솔안마을. 마을 이름이 정겹다. 소나무 안쪽에 있는 마을쯤으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실제 '솔안'이란 지명은 '송내(松內)'라고도 불린다. 말 그대로 큰 소나무에 둘러싸인 마을이란 뜻이다. 그래도 순우리말이 부르기에도 듣기에도 더 정겹다.

한 때 이 마을은 서른 가구 정도가 모여 살 정도로 나름 큰 취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 마을에는 건장한 청년 일꾼들이 스무 명 남짓 있었고, 어린이들도 많아 매우 시끌벅적하고 재미난 일이 많았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아 마을을 떠나 지금은 단 네 집만 남아 있다. 젊은이에 속하는 60대 부부가 사는 두 집과 노부부가 사는 한 집, 그리고 노인 혼자 사는 한 집이다. 주택 두 채가 더 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고 비워놓아 많이 허물어졌다.

밭에서 지팡이를 짚고 일하는 엄복순(76)씨를 만났다.
"옛날에는 참 많이 살았죠. 여기저기 있는 밭이 모두 집터였어요. 그런데 사람이 안 살고 떠나서 모두 뜯어내서 몇 집 안 남은 거죠."
 

▲ 네 가구가 모여 사는 진안읍 반월리 솔안마을 모습.
◆마을 뒤엔 노송 몇 그루
솔안마을이란 지명과 달리, 지금 마을엔 소나무가 많지 않다. 마을 뒤에 모양이 좋은 노송 몇 그루가 있기는 한데, 마을을 둘러쌀 정도는 아니다. 다만, 예전에는 소나무가 꽤 많았을 거란 짐작만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을 뒤 낮은 산이 사유지라서 그렇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본래 나이 많고 모양이 좋은 소나무가 많았던 산인데, 산 주인이 인삼밭을 만들려고 개간하기 시작하면서 소나무를 많이 베어 냈단다.

또 마을 앞에 있는 마을 숲 역시 소나무가 아니다. 느티나무와 참나무, 서나무, 아카시아 등 수종이 다양하다. 마을 안쪽에는 은행나무도 몇 그루 있다.
 
◆철없던 아이들
한참 사람이 많이 살았을 때는 매년 정월 보름마다 당산제를 올렸다. 마을 앞에 수령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나무에서 지냈다. 당산제를 올리는 날은 마을 잔치가 있는 날이었기에 마을에는 활기가 넘쳤다.

그러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동네 꼬마들이 쥐불놀이를 하다 불이 옮겨 붙어 나무를 태운 것이다.
당시 당산나무에 붙은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마을에서 진화에 실패하고 진안읍에 있던 소방대원들까지 출동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불은 며칠간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당산제 전통은 여기서 끝난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외기마을 어린이들은 솔안마을 뒷산 고갯길을 넘어 학교를 다녔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소나무숲에서 모여 노는 일이 잦았는데, 한 번은 불장난을 하다 커다란 노송을 태운 것이다. 한 주민은 그 나무가 불에 타지 않았다면 보호수가 됐을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 마을로 이사온지 50년이 넘은 엄수남씨.
◆꾸준히 일하는 게 건강 비결
마을을 둘러보다 박공남(76)씨를 만났다. 고추를 심어놓은 비닐하우스에서 잡초를 뽑아내려 가는 길이었다.
"열여섯에 영감님한테 시집가서 우리 아들이 두 살 때 여기로 이사 왔어요. 우리 아들이 지금 오십이니까 50년 정도 됐지."

아들 넷에 딸 둘을 뒀다는 박공남씨. 지난해 허리를 다쳐 수술까지 받았다. 그래서 일하는 게 영 수월하지가 않단다.

"우리 영감님이 나보다 11년이나 연세가 높거든요. 그런데도 아주 정정하세요. 귀만 조금 어두우실 뿐 건강하세요."

얘기를 나누던 중에 박공남씨의 남편 엄수남(87)씨가 등에 소독약 통을 메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머릿결은 검었고, 걷는 모습이 매우 건강해 보였다.
소독을 마친 엄수남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건강? 뭐 따로 운동한 것도 없고, 비결도 없어요. 난 어렸을 때부터 일만 한 사람이에요. 그냥 꾸준히 일해서 건강한가 봐요. 허허허."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엄수남씨가 닭장에서 푸드덕대는 암탉 한 마리를 가리켰다. 지금까지 달걀을 예순 개 이상을 나은 효녀란다.

"수탉도 한 마리 있었는데, 자꾸 암탉에 올라타서 털이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며칠 전에 아들네가 왔을 때 잡아먹었어요."

암탉이 기특하다며 "허허허"하고 웃는 엄수남씨의 얼굴이 환했다. 여섯 남매가 모두 장성해서 잘 살고 있으니 이젠 욕심도 화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더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모양이다. 환하게 웃는 엄수남씨의 모습은 이날 파란 하늘을 닮아 있었다.

▲ 솔안마을 뒤 소나무 숲. 숲 사이 고갯길은 외기마을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는 길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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