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박선진 <소설가·주천면 무릉리>

나는 요즘 드라마 '대왕세종'을 즐겨본다. 거기에는 우리가 진정 바라는 통치자의 모습이 담겨있어서다. 드라마란 현실의 대리만족을 바탕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라는데 정말 대리만족으로만 지나가고 말라는 것인지 우려도 하면서 본다.

지난주에는 양반들의 토지를 줄여서라도 백성의 굶주림을 줄여보자는 세종의 어진 뜻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양반들이 부끄러움도 잊은 채 미친 듯이 신문고를 두드려대고 있었다. 신문고의 제도가 오늘에 이어진 것이 전자민원일 것이다.

그런데 문은 열리고 닫혀야 문이고, 편지는 답장이 있어야 편지인데 열리기만 하고 닫치지 않는 문이나 답 없는 편지를 과연 편지라 할 수 있는지 그럼에도 나는 일 년이 넘어 이 년이 다 되어가도록 그 답을 기다리는 참 아둔한 사람이다.

'비밀글' 로 글을 올린 것이 지금까지도 어떤 답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2월에 마을진료소에 인사이동이 있었고 그 와중에 드러난 문제점을 두 번 제기했었다. 한번은 군정기자단장을 통해서 직접 보건소에, 그 뒤는 처리결과가 미흡해 전자민원 '비밀글'로 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지났다.

미흡했던 건 거창한 문제가 아닌 기본도 안 되어 있는 공무의 실책을 물은 것인데 큰 사건도 언제나 작은 기본의 불충실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생각날 때 마다 궁금해 했었다.

인사이동이 있었을 때, 6년 동안 근무한 전임자가 이동하면서 A4용지 한 장에다 그것도 수기로 쓴 장부를 넘겨주고 간다는 일이 가당키나 한가! 나는 단지 그 점을 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답이 없었고 들리는 소문만 무성했다.

'이 마을에 누가 누구를 시켜서 그런 고발을 했다' 는 등의 소문을 공무원들이 하고 다녔단다. 이것도 시골스런 처리방식이라 여겨 넘어 갈렸더니 감사 운운 하던 것도 조용해지고 서류꾸미는 걸 지도하여 장부를 짜 맞추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아 전자민원으로 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도록 아무런 답신도 없었고 어느 새 비밀글은 지워진 듯 찾을 수 없었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이 겁난다. 잘못하는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처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누군가가 다칠 수 있어서이고 도리어 잘못한 본인보다는 잘못을 지적한 나 같은 사람이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인상 지워지는 것이 겁난다는 이야기다.

드라마의 신문고도 사실은 양반님네들이나 두드려댈 수 있었을까 힘없는 백성은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나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그래도 나는 말해야겠다. 어쨌든 시작한 일이니까. 언로는 혈관과 같은 것. 혈관이 막히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지만 증상이 두드러지기 전엔 자각하지 못하는 것도 아둔한 우리네 사람이다.

곁들여 마을사업들은 언제나 끝이 나려는지. 우리는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만큼 시작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반면에 나머지 반은 그 절반의 시작에 너무 힘을 쏟아 부어서인지 내버려두는 게 관습처럼 되어있다.

시작처럼 처음 사업을 선정할 때처럼 주의를 기울인다면 나머지 반으로 국민의 세금이 줄줄이 새는 일은 없을 터인데. 어느 마을에 가든지 수군거리는 소리가 도를 넘는다. 왜 수군거리기만 하는지 이해는 가지만. 요즘은 이런 생각조차 든다.

사업의 '사'자 조차 모르는 순박한 농민들이 이렇듯 편법과 속임으로 세금을 제 돈처럼 허술하게 취급하는 것도 다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차라리 마을에 사업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 그나마 마을사람들 마음이나 갈라놓지 않을 것인데 하기도 하는 뭐 무서워 뭣 못 담그는 턱도 없는 말도 나오게 한다.

드라마 즐겨보는 사람이므로 드라마 예하나 더 들고 가자. 외아들 책상 앞에 커다란 자신의 사진을 붙여놓고 '엄마가 보고 있다' 며 아들을 감시하는 어른들, 왜 정직과 정의를 배우게 해놓고 그 아이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는 것은 모르시는지.
그나저나 언제쯤 비밀글의 답을 받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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