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이왕선 전주이씨 진안군 종친회장·

▲ 이왕선 씨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난 누구이며, 사후세계는 존재하는가'란 고민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의문은 동서고금을 통해 지난 수천년간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이야기, 즉 고담준론(高談峻論)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세에 이르기까지 이에대한 명쾌한 해답은 제시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단언컨데, '사후세계는 분명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혼수상태에서 영민(永岷)하듯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이 그렇고, 많은 종교학자들 또한 영혼의 존재를 이야기 함에 있어서다.

그러기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후세계라 할 수 있는 극락이나 천당을 가기위해 공을 들이고 기도를 올린다. 선업(善業)을 쌓기위해 착한 일을 찾아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사후세계를 인정치 않고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반추될까?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쾌락만을 좇는 삶을 살아가려 할 것이다.

자신이나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없이 흥청망청 할 것이고, 그 결과는 윤리와 도덕이 없는 세상, 진리가 사라진 혼탁하고 살벌한 세상으로 귀결될 것이다.

선조의 묘자리를 잘 모시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제사를 지낼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기에, 문중은커녕 경로효친과 조상숭배도 존재치 않는 '개차반'이 될 것은 자명하다.

'잘되면 제 탓, 잘 못되면 조상 탓'이란 속담도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 데서 비롯됐으며, '조상을 잘 섬겨야 복을 받는다'는 옛 말도 그러한 지혜에서 나온 말이라 할 수 있다.

또 평소, 조상을 만나는 꿈을 꾸거나 꿈자리에 따라 이튿날 자신의 일정이 풀려나가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이는 몸은 잠들어 있어도 영혼은 몸을 벗어나 배회하고 있음의 증거임에 틀림없다.

필자가 전주교도소 불교교화위원으로 활동할 때의 일이다. '죄는 짓는대로, 공은 닦은대로'란 주제로 법문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재소자 한명이 "사후에도 영혼이 살아있다면 그 증거를 대보라"라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위령제(慰靈祭)'와 '천도제(遷度祭)'를 지내는 것이 그 한 증거"라 답해 준 적이 있다. 재소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까지, "사람이 한번 물에 빠져 죽은 자리에서 계속해 비슷한 익사사건이 발생함에 영혼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라는 등의 예시를 애써 열거해야 했다.

영혼의 실체를 논함에 있어, 육체는 빼놓을 수 없는 논제거리다. 인간의 육체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대요소로 이뤄져 있고, 그 육체에 영혼이 겹쳐 사고(思考)를 하는 상태로 존재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영혼도 수행 등을 통하면 혜안에 들어온다는 게 필자의 경험론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자신의 몸 자체만을 자신의 실체라 여긴다. 그래서 육체인 이몸이 죽으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불교에서 12연기(十二緣紀)의 법칙을 가르치고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의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핵심사상으로 삼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부처는 육도윤회의 세상을 보고 깨달음을 통해 영혼이 윤회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길을 중생에게 제시해 줬다. 원불교의 일원상(一圓相)을 통한 숭배도 윤회의 법칙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살이가 날로 힘들어진다는 얘기가 여느때보다 많이 회자된다. 그렇다고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될성 싶다. 사람답게 살면서 좋은 일만 하기에도 빠듯한 때문이다.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고 살아간다면 그 영혼의 갈 길은 불 보듯 뻔하다. 영혼이 우리의 육체를 떠나서도 극락이나 천당에 안식, 영생할 수 있는 길을 왜 모르는 지…. 그저 답답할 노릇이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않는다 할지라도, 사후세계를 위해 보험든다는 자세로 선행에 게을리 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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