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규홍 <새진안포럼>

녹색평론을 보다 최성각선생의 글 중에 재미있는 구절을 하나 건졌다. 옮겨보면, 2007년 9월, 힘 센 나라 러시아에서 핵폭탄 급의 재래무기를 개발해 서방에 과시를 했다.

'모든 폭탄의 아버지' 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그 위력이 소규모 핵폭탄에 버금가는 대단한 무기라고 한다.
그런데 그 폭탄의 개발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알렉산드로 루크신 러시아 합참차장이라는 자가 한 말이 어이없고 무서우면서도 한편 재미있다.

그자는 러시아 국영 TV와의 인터뷰에서 "이 폭탄은 세계 최강의 재래식 폭탄으로 핵무기와 맞먹는 위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방사능을 내보내지 않아 친환경적이다." 라고 떠들어댔다고 한다.

에휴! 말이라고 다 말인지 원. 그럼 이 폭탄에 맞아죽는 사람들은 인류에게 유익한 친환경 폭탄에 맞아 '친환경적으로' 죽는 행복한 사람들인가?
 
송영선 군수는 축사를 통해 "FTA협상을 농민단체들이 거부하고 있지만 세계는 변화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단체나 나라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농업이 아닌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라면서 돈 버는 농업을 강조했다. / 진안신문
 
도대체 진안이라는 산골에서 돈 벌수 있는 농사가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누가 좀 알려주면 그대로 따라 하련만. 70년대에 근대화, 산업화바람을 일으키려고 목에 핏대 세우던 정치꾼들이 하던 말을 우리의 군수께서 그대로 암송하고 계신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박정희는 식량증산과 돈 버는 농업을 부르짖으면서 농업을 산업으로 편입시켜버렸다.
식량으로서의 농업생산물을 시장의 상품으로 변질시키던 그 순간부터 우리의 농촌과 농업은 자본과 도시에 종속화 되며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

농사가 시장에 내맡겨지는 상품이 되어선 안 된다. 그 자체로서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이런 말을 꿈같은 허황된 소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어쩌랴. 이게 진리인걸. 변해야 할 건 농민이 아니라 중앙과 지방정부의 책임자이며, 공무원이며, 농협과 무슨무슨 조합들이다.

정부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소농을 육성하고 그들의 다양한 생산물을 남김없이 팔아주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무한경쟁과 시장주의에 농업을 내맡기는 그 순간, 우리의 농업은 포기하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무슨 처방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손바닥만 한 진안에서, 코딱지만 한 농토를 가지고 노부부가 소꿉놀이 하듯 짓는 농사가 무슨 수로 외국의 거대 기업농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지 난 모르겠다.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기만 하고 변화하기만 하면 현재의 조건이 달라지나?
모르겠다. 혹 몇몇은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 기발한 아이디어와 적절한 자본력으로 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러나 변화를 하려해도 그럴 조건이 안 되는 대다수의 소농과 영세농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들 모두가 경쟁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있으면 좀 알려 달라. 경쟁이 안 되면 이제 그만 농사 때려치우라고 할 텐가. 또 변화하라고,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라고 몰아세우기만 할 텐가?

지금껏 우리 농민들은 권력자들과 행정의 요구를 하나도 어기지 않고 따라주었다.
그 결과가 현재의 농업과 농촌의 모습이다. 산업화바람이 불어 닥친 이래 농민들이 제멋대로 농사지어서 오늘날 이렇게 된 건가?

권력자들이여! 역대의 대한민국 정부여! 당신들이 틀린 거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꿇기고, 해마다 농민들이 여의도로 달려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구호를 외쳐대야 하는 이유를 정녕 모르고 있단 말인가.

시장만능주의를 설파하면서 약소국의 고혈을 빨아 제 배만 채우는 세계 최대의 채무국가, 생산보다 소비를 더 많이 하는 나라, 소득보다 빚이 더 많은 나라, 그런대도 잘 먹고 잘사는 풍요의 나라, 바로 흡혈귀 같은 나라 미국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오늘도 세계를 상대로 막강한 부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이 달러를 쥐고 흔드는 '팍스 달러리움'이 계속되는 한 우리와 같은 약소국들은 그 발아래 엎드릴 수밖에 없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빚이 45조 달러라고 한다. 미국을 다 팔아야 갚을 수 있는 엄청난 액수다.
얕은 계산속으로만 봐도 세계 최고의 힘센 빚쟁이와 거래(FTA)를 하자고 덤비는 건 바보짓이다.
FTA로 우리가 포기해야하는 부문이 농업이고 식량주권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농산물이 식량이 아닌 상품과 돈으로 취급되는 순간 벌어질 사태가 식량위기임도 다 아는 사실이다.
북한은 식량자급률이 70퍼센트라고 한다. 그럼에도 엄청난 사람들이 해마다 굶어 죽어가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식량을 살 수 없으면 굶어 죽는 단 말이 아닌가. 돈도 없고 외교적으로 고립이 되어 식량을 살 수 없는 거나, 식량위기의 시대가 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거나 못 먹어 굶어 죽기는 마찬가지다.

식량자급률이 20퍼센트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무슨 배짱으로 먹을 것 가지고 거래를 하려한단 말인가. 이건 배짱도 아닌 무모함과 무지일 뿐이다.
아닌 건 끝까지, 죽어도, 아닌 거다.

아닌 것 같은데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냥 따라 해보자? 그러다간 다 죽고 만다.
지금은 농업을 돈 버는 산업으로 인식할 때가 아니다. 경쟁력을 부추겨 농업을 시장에 내 놓을 때는 더욱 아니다.

산골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는 소농과 영세농들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들이 걱정 없이 농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살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렇게라도 이 땅의 농업이 명줄을 놓지 않고 이어가게 해야 한다. 머지않은 식량위기의 시대에(지금도 이미 식량위기의 사태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자식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퀭한 눈으로 누굴 원망할지 생각하면 두렵다.

농사꾼이 모두 계산 빠른 장사꾼으로 '변화'하여 돈 되는 농사만 짓는다면 장차 우리의 먹을거리는 누가 책임질지 깊이 생각해 볼일이다.
'농업의 경쟁력'이란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 '친환경 폭탄'이란 말이 떠오르는 이유이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