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67 마령면 동촌리 … (1)원동촌

▲ 마을 약도
한동안 날이 포근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근래에 내린 비를 생각하면 비교적 많은 양이다. 다른 것보다 비가 그치면 날이 꽤 추워질까 걱정이다. 간혹 주택 굴뚝에서 장작을 때는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번에 찾은 곳은 마령면 동촌리(東村里)다. 마령면 동쪽에 있다고 해서 편하게 불렀던 모양인데, 그게 마을 명칭이 됐다.

동촌리는 상동촌리(上東村里), 중동촌리(中東里村), 하동촌리(下東里村) 세 자연마을로 나누어 불렀다. 그리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금당리(金塘里)를 병합해 지금의 동촌리가 됐다.

지금은 원동촌(元東村)과 서금(西金) 두 행정리로 나뉘어 있으며, 서금은 다시 서촌(상동촌), 화전(꽃밭정이, 중동촌, 신촌), 금촌 등 자연마을로 나뉜다.
 

▲ 산 아래 동촌마을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마을 앞 동촌교 옆에 둥구나무가 서 있다.
느티나무 아래 공적비
마령면 평지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 원동촌이다. 마을 주변으로 넓은 뜰이 펼쳐져 있고, 곳곳에 비닐하우스도 많이 눈에 띈다. 이미 수확철이 한참 지나 겨울 문턱에 와 있어 뜰은 황량하기만 하다. 가끔 볏짚을 나르는 트랙터가 오갈 뿐이었다.

진안읍과 마령면을 잇는 국도를 따라가면 '원평지 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국도에서도 마을이 보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일은 없다.

좁은 마을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언제나 마을의 존재를 알려주는 느티나무가 당당히 서 있다. 지금은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어지럽게 얽힌 가지에 잎이 무성하면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할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또 나무 위에는 마을에서 안내방송을 할 때 멀리까지 소리를 전하는 스피커를 매달아 놓았다. 여름에는 잎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스피커가 유난히 또렷하게 보인다.

그 아래 작은 비석이 하나 숨어 있다. 농자재에 가려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칠 뻔했다. 약간 기울어진 비석은 비를 맞아 촉촉이 젖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만든지 얼마 안 된 비석이었다.

앞면에는 '원동촌청년회공적비'라고 큰 글씨를 새겨 놓았다. 그리고 뒷면에는 마을 노인들을 위해 청년회가 효도관광을 시켜줘 고맙다는 노인들의 마음을 새겼다. 또 청년회 회원들 이름을 하나하나 새겼다. 1990년에 건립했다고 새겨놓은 것을 보니, 당시만 해도 마을에 젊은 사람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 예전엔 거북이가 있었다는 돌탑.
동촌교 건너 빽빽한 주택
20년이 조금 못된 다리 '동촌교'를 건너야 원동촌에 이를 수 있다. 동촌교 아래는 갈대가 가득하다. 요즘 비가 적어 가물었는지, 유량이 많지 않았다. 물길에 자란 갈대는 물이 흐르는 방향대로 누워 있었다.

다리를 건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무 세 그루다. 나란히 줄지어 자라고 있는, 비교적 굵은 나무다. 교통에 방해가 된다고 잘라버렸을 법도 한데, 마을에서는 그대로 두었다.

바로 옆에 정미소가 있다. 페인트를 칠하고 일부 보강도 한 모양인데,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정미소 뒤로 마을회관이 있다. 넓은 마당을 만들어 놓고, 가장자리에 국기계양대를 세워놓았다. 세 게양대 가운데 하나에만 태극기를 걸어두었다. 가끔 불어오는 비바람에 태극기가 요동친다.

정미소 옆을 지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발을 헛디딜지 모르겠다. 복개한 물길을 열어 빨래터를 만들어놓았는데, 지금도 꽤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마을을 처음 방문한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주택은 밀집해 있는 편이다. 얼핏 보면 규모가 꽤 큰 마을인데, 안을 들여다보면 빈집도 많다. 한 때는 50집이 넘었을 정도로 흥했는데, 지금은 스무 집이 조금 넘는단다. 혼자 사는 노인이 많은데,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많다는 게 주민들 얘기다.

마을을 돌아보아도 인기척이 거의 없었다. 가끔 날씨를 보려고 살짝 고개를 내밀었던 사람도 금세 집안으로 들어갔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기온이 떨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을회관은 여전히 비어 있는 채였다.
 

▲ 빨래터. 지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마을 오른쪽 지키는 숲
마을 오른쪽으로 느티나무 숲이 있다. 마을과 인접해 있어 못 본채 지나칠 일은 없다. 마을 어귀 둥구나무 못지않은 굵기와 높이, 대부분 오랫동안 마을에서 가꿔온 나무였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상태였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왠지 모를 푸근함이 느껴진다. 원동촌마을의 수구막이 숲이다.

숲 한쪽에는 이상한 모양의 돌탑이 서 있다. 시멘트를 이용해 원통형으로 돌을 쌓고 위를 평평하게 한 뒤, 그 위에 가늘고 긴 모양의 선돌을 세워 놓았다.

본래 이곳은 거북이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곳이었다. 서촌 뒤 써래봉이 화산(火山)이기 때문에, 그 화기를 막으려고 거북이를 올려둔 것이었다.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 저녁에 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런데 1970년쯤에 이 거북이를 도둑맞았다. 마을에서 만난 한 술 취한 노부는 인근 마을에서 가져갔다고 주장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거북이를 도둑맞은 뒤, 마을 청년들이 냇가에서 지금 있는 돌을 구해 세웠다.

거북이를 도둑맞은 뒤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게 1982년이라고 한다. 마을에서는 한동안 끊겼던 제를 다시 올리기 시작했다.

돌 모양이 길쭉하기 때문에 재미난 속설도 있다. 이 선돌이 '남성'을 상징하는데, 그래서 이 돌탑에 제를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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