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71 상전면 주평리(1) … 원주평 마을
주민들 마을회관 하나 없이 불편한 삶

대덕산(602m)과 부귀산(722m)이 묵직하게 바라다 보이는 상전면 주평리 원주평마을(이장 이상덕)을 찾았다.

구슬개 또는 구슬고개라 불러왔던 원주평마을. 부귀산 줄기가 마을 뒤로 구슬처럼 동그랗게 감싸고 있어 그 곳으로 넘어가는 재를 구슬개, 구슬고개라 불렀고, 마을 앞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구슬 주자와 들 평자를 취하여 주평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마을의 지명 안에 법정리의 이름이 들어간지라 마을의 규모 또한 가장 클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갔지만 한눈에 봐도 왜소한 마을임을 느꼈다. 주민들을 만나고자 마을회관을 찾았지만 회관으로 짐작할 만한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먼저 찾아가야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웬 작은 컨테이너 건물 안에서 아주머니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빠끔히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아주머니 여섯 분이 눕거나 앉거나 하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여기가 마을회관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며 인심 좋게 자리를 권했다. 제대로 찾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 마을주민 태기봉씨가 초등학교가 있던 옛 마을 터를 가리키고 있다.
용담댐으로 왜소해진 원주평 … 용담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마을 중에 더 번창한 마을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원주평 만큼 풍족했던 마을이 왜소해진 곳이 또 있을까. 마을 주민들의 얘기에 의하면 원주평마을은 농사짓기에 알맞은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덩달아 인심 또한 후박했다고 한다.

지역에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언제나 앞장서서 봉사에 참여했고 마을 기금이 풍족해 이웃돕기 행사가 잦는 등 상전면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몰로 인한 보상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마을 이주를 위한 터 선정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보상이 끝난 주민들은 새로운 이주 터가 마련되지 않아 각자들 알아서 제 갈 길을 갔다고 한다.

그렇게 맥없이 흩어지던 과정에 뒤늦게야 현재의 터가 결정되었다고 하니 그 많던 주민들이 다시 모이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음은 뻔 한 일이었다.

농사짓기가 불편해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현재의 터로 옮긴 주민들은 언제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그러나 바라만 봐야 하는 예전의 마을 터를 보며 설움의 눈물을 삼켰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 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컨테이너 건물
변변한 마을회관 없어 … 풍족하고도 넉넉했던 마을이 이주 후 12가구 30여 명의 왜소한 마을이 된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회관 부지를 마련할 재원이 없어 조그만 컨테이너 1동을 경로당으로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원주평마을 경로당은 그 규모가 1평 모자란다는 이유로 정식 경로당으로 인정받지 못해 국가로부터 아무런 해택도 받고 있지 못하다고 한다.

마을을 새로 조성한 후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현재의 17㎡(5평) 형 컨테이너 1동을 마련했다. 물론 군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경로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규모라는 얘기를 듣고 마련한 경로당이었다. 그러나 막상 등록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면적이 한 평 모자라 경로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통보가 날아온 것이다.

담당 공무원이 바뀐 이후의 통보인 것이다. 항의도 많이 했지만 '규정대로'라는 현실을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넉넉지 않은 마을 주민들은 군이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었다.

▲ 건물 안에서 마을주민들이 모여서 정담을 나누고 있다.
40년 전 마을에 농지 희사한 사람 있어 … 매년 음력 10월 10일이면 마을 주민 전체가 이장 집에 모여 제사를 모신다.

고 김흥열씨의 제사다. 가정은 꾸렸지만 자식을 보지 못하고 늙어가던 고 김흥열씨는 죽어서 제사 밥도 못 얻어먹겠다며 자신이 죽으면 양지바른 곳에 묻고 매년 기일을 지켜줄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당부하며 약 6,600㎡(2천 평)의 밭을 살아생전에 마을에 희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원주평마을 주민들은 현재까지도 음력 10월 10일이면 이장 집에 모두 모여 고 김흥열씨의 제사를 지내고 그날만큼은 일을 쉬고 잔치를 벌인다는 것이다.

▲ 마을에 농지를 희사한 김흥렬씨의 묘소
병마골에 군인 들어온다는 예언 적중 … 마을에서 부귀산으로 오를라치면 병마골을 만나게 된다. 마을 주민 태기봉(72세)씨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왜 골짜기 이름에 '병사 병'자가 들어있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언젠가 이곳에 군인이 들어올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 정말 군인이 들어왔다. 병마골 일대가 군인들의 사격장으로 변한 것이다.

사격장이 생긴 후 빈번한 사격 훈련에 주민들의 피해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현재도 자물쇠가 꽁꽁 묶여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채로 잡풀만 무성한 사격장은 최근 2년간은 군인들의 출입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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