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김주환 <새진안포럼·진안치과>

헌법전문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신 "대한민국은 주식회사다."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민주와 공화가 이념인 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공권력에 의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 철거민의 죽음이 바로 그렇다.

검찰의 수사발표를 보자. 모든 책임은 부당한 점거 농성을 한 철거민들에게 있다. 경찰은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경찰등 공권력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거다. 김석기 청장의 사퇴를 야당과 많은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는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의 정국 변화에 따라 김석기 청장이 물러날 수도 있고, 글자 그대로 "철거민들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그들의 어이없는 죽음이 마무리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석기 총장의 사퇴냐, 버티기냐가 이번 참사의 핵심이 아니다. 용산참사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봐야만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나는 대한민국주식회사의 CEO다."라는 선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민주공화국을 주식회사로, 대통령 스스로를 CEO로 규정했다. 자동적으로 주권(主權)은 주권(株券), 국민은 주주, 통치는 비즈니스, 국민투표는 주주총회로 재규정된다.

오랫동안의 경제적 어려움에 고통 받아온 국민들은 이를 수용하고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주식이 없던 국민들은 주식회사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던 것이다. 주식이 없는 국민은 대한민국의 주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은 국가의 일원이지만 국민은 아닌 자들이다." 이들은 국민이면서 국민이 아닌 '비국민'들이다. 한나 아렌트가 1930년대 나치 치하의 유태계 독일시민들을 가리키며 사용했던 말이다.

위기가 닥치면 늘 국민의 단결과 희생을 요구한다. 국민 전체의 생존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간주될 때 가장 먼저 희생을 요구받는 이들이 있다.

국가 부도의 위험을 이유로 구조조정의 불가피한 희생자로 지목되는 노동자들,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 구조조정의 불가피한 희생자인 농민들, 영세 자영업자와 일용직 노동자 등의 도시 서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정부가 국가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그 자원으로 고려되지 않고 기껏해야 숨만 쉬고 살 정도의 생존만이 보장되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비국민'이다.

이명박 정부는 '비국민'을 보호하고 지키기보다는 국가 안보의 위험요인으로 보고 있다. 법치주의의 이름아래, 공권력에 대한 도전을 엄정 대처함과 동시에 '세금폭탄'과 같은 사유재산권 침해는 없애려 한다. 대한민국에서 종부세를 내야할 정도로 많은 주식을 가진 주주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고 확대하려 한다.

그에 반해 최소한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주식을 갖지 못한 비국민은 보호대상이 아니라, 공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이며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다. 누가 '국민'이고 '비국민'이냐의 기준은 주식의 보유 여부이다. 물론 많은 주식을 가질수록 더욱 보호된다. 주식이 없는 자는 아무런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주식회사이고 주주총회다.

1월 29일 H신문의 한 컷 만화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건설사, 용역, 투기꾼과 공권력은 용산의 철거민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너 하나'만 희생하면 모두 배부르다고! 그러나 '너 하나'는 소수가 아닌 다수이다. 성실히 일했으나 주식만 없을 뿐인 힘없는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 들이다. 대주주인 그들이 말하는 '너 하나'는 바로 '비국민'들이다.

국가 권력은 비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비국민들은 새로운 연대를 창출하고, 새로운 대안적 공공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국가가 "우리, 잃어버린 자들"을 보호하지 않거나 못할 때는 잃어버린 우리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농민과 농민과의 연대,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 농민과 도시서민과의 연대와 같은 새로운 연대가 필요하다. 용산참사의 희생된 뜻을 기리고 잘못된 공권력을 규탄하는 것, 농촌인 진안에서 시작하는 것도 하나이며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진 자들의 논리 속으로, 가진 것 없는 우리들이 그 무한 경쟁에 뛰어들어 살아남으려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 경쟁이 아닌 연대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 "연대는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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