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땅 등지고 새로 조성한 마을, 물 많고 풍경 빼어나 살기 좋아
우리 마을 이야기 76 정천면 모정리 … 용정마을

▲ 정천 망향의동산에서 내려다 본 용정마을
2월 19일. 아침부터 흐릿한 날씨가 좀처럼 개지 않으려는 모양새다. 하늘은 오후가 되면서 더욱 흐려지더니 어느새 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온 세상을 하얀 도화지로 만들었다.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한 날씨에 정천면 모정리 용정마을을 찾았다.

용정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바라본 용담댐은 극심한 가뭄으로 담수된 물이 점점 줄어들면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예전에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하나 둘 발견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콘크리트 포장도로였다. 이 도로 위를 무수히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갔을 것이다.

예전 집터로 보이는 흔적도 볼 수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물속에 잠겨 있다 가뭄으로 물이 빠지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용담댐으로 수몰되기 전까지는 그곳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형태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대신 그 옆으로 배 한 척이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다.
수몰지역 주민들은 이주단지를 조성해 생활을 하고 있다. 그곳에 용정마을도 포함된다.
 
◆평화로운 곳, 용정마을

용정마을은 정천 망향의 동산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망향정 꼭대기에 올라 바라본 용정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망향정을 내려와 용정마을로 향하는 내내 마을이 평온하다는 느낌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 느낌 그대로 간직하고 찾아간 마을에서 처음 만난 마을주민이 이미옥씨다. 안면이 있는 이씨의 나지막한 목소리에서도 마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제가 마을에서 제일 젊어요. 우리 마을에는 저보다 모든 분들이 나이가 많으셔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 울음소리도 들을 수 없어요."

이씨의 나이 올해 마흔여섯이다. 이씨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있어야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그러한 여건이 못 되는 것 같았다.
 

▲ 설광규, 안복현, 안순용씨
◆육지에서 어부가 된 사람들
이미옥씨가 가르쳐준 곳은 이 마을 이장 집이었다. 문종호 이장을 찾아간 곳에서 안복헌(69) 전 이장과 안순용(64) 마을개발위원장(전 부면장) 그리고 설광규(58)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디를 갔다 좀 전에 도착한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용정마을에 오는 길에 보았던 배에 타고 있던 주인공들이었다.

이들 4명은 공동으로 어로행위를 하고 있었다. 수몰지역 내에서 어로행위 허가를 받아 활동하고 있는 어민(?)들이 많지만 유일하게 이들 4명만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 잡았는지 그 전날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른 팔뚝만 한 물고기도 눈에 띄었다. 올 2월부터 어로행위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지금까지 잡은 물고기인 모양이었다.

"용정마을은 특별한 소득원이 없어 고기 잡고 있지. 그런데 배스와 블루길 등 외래어종이 토종물고기를 잡아먹어 이제는 물고기가 나오지 않아. 댐 막은 후로 물고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2~3년 전에만 해도 물 반 고기 반이었지. 그때만 해도 민물 새우도 많았어. 그런데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들어."

이 말에 대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공감했다.
문종호 이장이 지난 5년간 댐 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변화가 무쌍한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한번에 민물 새우가 300g~500g까지 잡히던 것이 지금은 어쩌다 한 마리 보일까 말까 하는 상황이지. 또 그렇게 많던 매기와 쏘가리 등 지금은 전혀 보이질 않아."

용담호 속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주된 원인은 외래어종 배스와 블루길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배스와 블루길을 퇴치하기 위해 낚시 대회를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퇴치가 안 돼. 외래어종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상금을 많이 걸어 잡는 수밖에 없다고 봐. 지금처럼 해서는 어림도 없어.
 

▲ 문종호 이장
◆용정마을의 유래
용정마을은 수몰된 지역 주민들이 이주해 살고 있는 곳이다. 이곳 마을 이름은 전 부면장이었던 안순용씨가 지었다. 용정마을은 용룡(龍)자에 길정(程)자를 써 탄생했다. 용담호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용정마을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길목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용정마을은 현재 14가구가 살고 있다. 농토가 없어 논농사는 생각할 수 없지만 밭농사는 가능한 지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몇 명의 주민을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공동으로 작업하는 4명의 어부(?)가 살고 있다.

마을에 가장 나이가 많은 주민은 안순례(89)씨와 허태순(87)씨다.
모두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마을 지하 관정수를 먹고 배탈 한번 난적이 없다. 전북대에서 수질을 검사한 결과 놀랄 정도로 물이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수량 또한 300세대가 먹고도 남을 양이라는 것이다. 가뭄이 계속되고 있지만 용정마을은 물 걱정 하지 않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화합이다. 용정마을은 지난해 군비 지원 5천500만 원과 주민들이 모금한 1천400만 원을 들여 마을회관을 지었다.

내부에는 흙벽돌을 이용해 차별화를 주었다. 내부 물품은 마을주민들이 한 가지씩 기부해 사용하고 있다.
문정호 이장은 "내부를 흙벽돌로 만들고 보니 기름이 절약되고, 윗바람이 없어 잠을 자고 나면 개운하고 피로가 가신다."라면서 "회관을 지으면서 주민들이 단결과 화합되면서 잘 지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땅값이 제일 비싼 마을
용정마을 땅값은 비싸다. 어찌된 영문인지 용정마을 땅값이 3.3㎡(1평)에 30만 원에 거래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땅값을 터무니없게 올려놓은 결과라고 한다. 현재 용정마을에 들어와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땅값이 비싸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문종호 이장은 "사실상 들어와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농촌에 비해 땅값이 비싸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한다."라면서 "대전에 살고 있는 부동산 업자들이 많은 땅을 매입해 올려놔 마을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막고 있다."라고 말했다.

주민들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든 고향 땅을 떠나야 했는데 이제 이주지역의 땅마저 외지인들에게 넘겨줘 마음이 편치 않으니, 더 안타까울 뿐이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