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2009 신춘방담(新春放談) ⑥
윤 영 신(서울타임스회장)

◆이고 진 뎌 늘그니 짐 프러 나를 주오.
「이고 진 뎌 늘그니 짐 프러 나를 주오/나는 졈엇거니 돌히라 므거울가/늘거도 설웨라커늘 지물조차 지실가.= 짐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진 저 노인장이여, 그 짐을 풀어서 내게 주시오/나는 젊었으니 돌인들 무거울가/ 늙는 것도 서럽다 하는데 짐까지 지시겠는가.

선조13년(1580년)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때 백성들에게 교유(敎諭), 윤리도덕(倫理道德)의 실천궁행(實踐躬行)을 목적으로 지은 훈민가(訓民歌) 16수 중 반백자불부대(斑白者不負戴)라는 제목의 노인을 공경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송가가사의 백미(白眉)다.

경노사상(敬老思想)은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덕목(德目)중에서도 으뜸가는 가장 아름다운 인륜사상(人倫思想) 가운데 하나다. 애써 지켜 온 평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자칫 소외당하기 쉬운 늙은이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인성(人性)중 가장 아름답고 사려 깊은 삶의 자세라 하겠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 주위의 소문들이 그렇지 못하니 어쩌랴.

요즘 항간에 잘 불려지고 있는 유행가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어쩌고 하는 가사를 따라 중얼거려 보다가 물론 그것이 그런 의미는 아니겠지만 가끔씩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고전에서 읽었던 잊을 수 없는 어느 고전 언어의 아픔 앞에 우리와 지금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미에 관하여 잊을 수 없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계시지 않는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이요, 풍목지비(風木之悲)라고도 한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기기를 다 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주위의 노인문제에 관하여 깊은 애정으로 관심을 보여서 잊어져 가는 경노효친, 그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되찾아 가는 것이 이 시대 우리의 또 하나 덕목으로 보태지고 있는 숙제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해 있고 노인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지는 오래다.
노인은 전 세대에 후손의 양육과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존경 받아야 하는 존재가치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가 간직하고 있는 간접자본이다.

노인이란 표현은 인간의 생애과정에서 황혼기에 해당하는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측면에서 노화현상의 영향으로 그로 인한 사회적 기능수행에 장애를 갖는 노년기의 사람을 지칭하는 언어다. 심각하게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문제에 대하여 이제 개인을 떠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세계가 그렇게 대처하고 있는 중이다.

인간은 늙어서도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노인에 관한 지원은 그것이 적선(積善)의 의미여서는 아니 된다. 그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은 것이지 얹혀서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어느 유명인사는 노인에 대한 폄훼(貶毁) 발언으로 노인들의 분노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 이의 발언인즉 '노인들은 투표장에 나오시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집에서 쉬셔도 된다.' 아마 그러한 의미의 이야기였다고 기억이 된다. 그러나 그 이야기로 전국의 노인들은 또는 국민들은 들끓었다.

그의 발언이 내포하고 있었던 적선적 사고방식에 관한 의미 때문 이였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위치에서 긍정적 사고방식의 부정적 해석의 견해 차이와 부정적 사고방식의 긍정적 해석의 견해 차이의 그 속에 내포된 의미의 갈등을 착각하고 있었다.

노인의 복지(The aged welfare)란 그렇다.
노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또는 상응한 품위를 유지하면서 소속한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또는 소외당하지 않고 잘 적응하고 흡수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데 관련된 공적이거나 사적이거나 그 차원에서의 조직적 제반 활동을 말한다.

인간다운 생활이란 노인이 속한 사회의 발전적 수준에 맞게 의식주의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과 건강하고 문화적 삶을 유지하는 것과 그 사회적 조직 속에서 사회적 심리적 소외감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할아버지는 임종(臨終)의 순간 할머니의 손을 잡고 비감(悲感)스럽게 유언한다.

'임자, 잘 살아. 자식들한테 기죽지 말고 잘 살아.' 이건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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