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론
이규홍 <새진안포럼·주천면 무릉리>

3월31일은 화요일이다. 학생은 학교 가는 날이고, 직장인은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다. 그렇지만 이날 난 6학년짜리 딸내미와 함께 소풍을 가기로 했다. 김밥 싸가지고.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자라는 탈을 쓰고 미친 정책을 집행하는 자들의 장단에 나와 내 딸이 놀아날 하등의 이유를 찾지 못해서이다.

이름부터 희한한 [교육+과학+기술부]는 애초 3월10일로 예정되었던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3학년 대상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이달 31일로 연기하면서 전체 학생의 0.5%만 표집해 진단평가를 하겠다고 3월1일 밝혔었다.

그랬던 것이 며칠 만에 마음이 바뀌어 대부분의 시·도에서 31일, 같은 날 모든 학생이 동시에 시험을 치르는 일제고사 방식으로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맞춤형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라고 대통령과 교육부가 강조하는 일제고사 또는 진단평가라는 밥맛없는 정책을 나는 "사교육 진흥을 위해 꼭 필요한 수단" 이라고 고쳐 불러야겠다.

이미 예상한 사태지만 진단평가가 불러들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진단평가에 대비해 '시험 족보'라고 일컬어지는 기출문제집을 제공하고 기출·예상 문제들을 풀게 하는 사교육업체들의 마케팅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일제고사로 정확한 학생 실력을 진단해 학습지도 방향을 잡는다더니 이건 학원들 장사만 시켜주는 꼴이다. 학생들을 문제풀이 기계로 만들고 시험에 대비한 공부 경쟁에 내몰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진단평가 족보', '일제고사 족보'를 제공한다는 인터넷 강의 사이트들과 '진단평가 대비 하루 만에 끝내기', '핵심만 쏙쏙' 등 단기간 점수 향상을 겨냥한 프로그램들이 앞 다퉈 생겨나고 있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일제고사에 '전국 학생들의 성적 줄 세우기' 외에 다른 어떤 깊은 뜻이 숨어있는지 모르겠다. 대입선발고사 자율화, 국제중 설립, 고교 다양화 정책 등 현 정부의 모든 공교육 정책은 사교육과 형제관계를 맺고 사교육 시장을 키우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학생 1인당 월평균 23만3천원, 전국적으로 20조9천억 원을 사교육 시장에 쏟아 붓는 이상한 나라. 10년 전에 비해 3배가량 뛰었는데 그게 이명박 정권 들어서라고 한다. 소득의 차이에 따라 사교육에 투자(?)하는 액수도 8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한다.

말 그대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교육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평등교육?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이겠다고? 개도 안 물어갈 소리다. 돈 많고 똑똑한 부모 만난 아이가 돈 많고 똑똑한 어른이 되는 게 이명박식 질서요 진리다.

2000년 헌법재판소는 과외금지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바 있다. 그 결정을 신호로 사교육시장은 공룡처럼 몸집을 불리게 되었고 오늘날 사교육으로 인해 온 나라의 교육과 경제가 개판이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정말 이대로 막 나갈 참이라면 국민투표라도 해야 한다.

헌법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닌 것이 국민투표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국민들에게 물어야 한다. 무엇이 참 교육이고 무엇이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옳은 방법인지를 물어야 한다. 권력을 쥔 자가 나라의 주인은 아니다. 미래의 주인은 더구나 아니다. 왜 니들 맘대로 하려고 하는가?

핀란드는 1963년에 의회에서 교육개혁을 결의하고, 1968년에 법을 제정하고, 1972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육의 틀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쟁에서 벗어난 행복한 학교와 학생들을 위한 정책을 세우고 변화를 시행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 결과 지금 세계의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 물론 공부도 세계에서 일등이다.

얼마 전 학부모총회에 다녀온 아내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아이의 어머니가 선생님에게 불만 섞인 질문을 하더란다. 아이의 짝꿍이 학습능력이 많이 떨어지는데 그로인해 자기 아이가 공부에 방해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더라는 얘기였다.

그 아이는 나도 알고 있는데 평소에 말없이 친구들을 잘 살피고 챙겨주는 심성이 고운 아이다. 아마 그 아이의 어머니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좌우 살피지 말고 냅다 앞만 보고 뛰는 게 상책이라고 오해하시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그이를 만나면 꼭 해주고 싶다. 경쟁이 최상의 학습방법이 아님을 우리는 협동학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정문성 경인교대 교수는 "다른 친구한테 설명하는 과정은 자기가 아는 것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고 정리하는 '복습' 같은 효과가 있어서 성취도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고 말했다. 교육학에서는 이를 '인지 정교화'라고 하는데 이는 협동학습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논리다. (참고; 함께 커가는 '협동학습' '경쟁'보다 경쟁력 있다 / 한겨레신문)

우리가 본받고자하는 핀란드교육의 핵심은 '협동'이다. 그 어디에도 경쟁을 부추기는 내용은 없다. 우리의 전통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현재의 사회나 교육 그 어디에서도 협동이란 단어는 생소하기만 하다. 교육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교육은 그 혼자서는 변화도 개혁도 어렵다.

사회가 함께 변해야 교육개혁은 가능하다. 세상은 적자생존을, 무한경쟁을 기치로 걸고 날뛰는데 아이들에게만 협동의 미덕을 말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진안에서도 31일이면 일제고사가 치러질 모양이다. 진안의 학교와 아이들이 전국에서 몇 등이나 될지 솔직히 나도 궁금하다. 그러나 그건 포장마차의 주꾸미만도 못한 술안주나 될 일이다. 그런 사실을 까밝혀서 아이들에게 분발하라고, 이대로 가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자극을 줄 셈인가.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