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조중동(朝中東)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앞머리 글자를 따서 엮은 줄임말이다. 현재 조중동은 대한민국 신문 시장의 60% 가량을 차지하여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중동이란 용어는 이제 의미가 중요하고 사용빈도가 높으므로 국어사전에 실려야 될 만큼 일반명사가 된지 이미 오래다.

'조중동'이란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정부가 이번에 억지로 퇴임시킨 정연주 KBS 사장이 한겨레신문에 쓴 말이다. 더불어 '조중동은 조폭언론'이란 말도 같이 썼다. 스스로의 가치판단 없이 보스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조직폭력배의 생리처럼 신문사주의 이익과 입맛에만 맞추어 기사를 작성하는 조중동 종사자들의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언론이란 사실보도를 전제로 해야 한다. 언론이 성향에 따라 자신들의 주장을 펼 수도 있지만 일단 사실은 사실대로 보도를 하고 난 뒤의 일이다. 하지만 조중동은 사실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보도를 하는 척 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확대, 축소, 왜곡보도는 물론이고 고의로 기사를 누락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을 '할 말은 하는 신문'이라고 내세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행적을 아는 사람들은 그 말을 파렴치하게 여긴다. 일제 때의 친일행적이야 접어 두고라도 5공 때만 해도 군사독재정권 앞에서 할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미묘한 정치쟁점에 대해서는 아예 취재를 하지 않고 연합통신을 전재할 정도였다. 그러다 민주화에 편승하여 '할 말은 하는 신문'이라 하니 그 뻔뻔함이 어이가 없다.

동아일보의 경우는 보다 착잡하다. 필자는 동아일보 40년 독자였다가 10년 전에 끊었다. 그동안의 논조는 비교적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승만정권, 박정희정권 때도 가장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다가 광고탄압사태로 백지광고란을 싣는 세계 신문사상 초유의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다 사주가 정권과 타협하여 언론자유 수호에 동참한 많은 기자를 내쫓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힘든 언론 여건에서도 무슨 말을 독자들에게 해보려는 노력은 있었다. 이를 항간에서는 행간(行間)을 읽는다고 했다. 5공 시절 보도지침으로 신문에 제작되던 때 동아일보에 김중배 칼럼이 실렸다.

정론에 목마른 많은 사람들이 이 칼럼으로 목마름을 풀었다. 당시는 조선일보는 조간, 동아일보는 석간이었는데 토요일 석간에 김중배 칼럼이 나가면 다음날 조간 조선일보의 선우휘 칼럼이 같은 주제를 다루기 예사였다. 김중배가 가시밭길을 열어놓으면 선우휘가 그 길에 무임승차하는 식이었다. 이게 '할 말은 하는 신문' 조선일보의 본 모습이었다.

명심보감에 '천하의 열녀도 나중에 훼절하면 평생 정절이 헛되게 되고, 비록 노류장화(路柳墻花, 길가의 버들가지, 담장 밖의 꽃이라는 뜻으로 누구라도 쉽게 꺾을 수 있다는 데서 화류계라는 말이 생겼음)라도 나중에 일부종사한다면 평생의 지분(脂粉) 냄새가 지워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동아일보가 어떻게 그 이름을 조중동의 반열에 올려놓았는지는 이 좁은 난에서 설명하기는 좀 어렵다.

중앙일보는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이 공들여 키운 신문이다. 여론시장을 요리하고픈 재벌이 신문을 창간하고 공을 들여 보급하였다. 그 공들인 수단이라는 게 무가지 살포와 경품 제공 등의 비열한 수단이었지만 말이다. 당시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재력이 변변하지 못하였으므로 재벌이 뒷배를 봐주는 중앙일보의 물량공세에 맞설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키운 중앙일보는 역시 사주의 이익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땐가 삼성과 현대가 감정싸움을 할 때 평소 2면에 싣던 사설을 1면으로 옮겨 현대를 비난하는 사설을 쓴 일도 기억난다. 이번 삼성의 특검과 재판과정도 축소, 누락되기 예사였다.

재벌의 속성상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싣기란 어렵다. 그저 시늉이나 낼 뿐이다. 그래서 이번 정부 여당은 언론관계법을 고쳐 조중동과 재벌의 방송참여를 허용해 주려 저리도 안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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