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김회문씨
김 회 문 씨
진안읍군하리 출신
외환은행가락동지점장
재경전북대외환은행동문회장
외환은행테니스동호회 간사

그 아버지는 가난했어도 아버지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계셨던 자식을 위한 마음은 항상 누구보다 앞서가고 있었다. 일찍 그 아버지의 꿈을 그가 보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인생(人生)에 대한 두려움을 그 꿈으로 채색할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마음속에 아들의 장래를 예견(豫見)하는 프로그램을 간직하고 계셨고 아버지의 그 눈빛을 그가 너무 일찍 읽었기 때문에 그의 가슴에 흔적(痕迹)으로 안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외로움을 그는 운명(運命)처럼 갖고 있었다.

그가 진안초등학교 삼학년 때 은천초등학교에 전학하여, 오학년 때 다시 전주중앙초등학교에 옮겨가던 그날, 아버지는 개다리소반(小盤)위에 막걸리 잔을 따르게 하시면서 그가 난생 처음 보는 표정(表情)으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중국의 황하 상류에 용문(龍門)이라는 협곡(峽谷)이 있는데 그 근처(近處)의 물 흐름이 아주 빨라서 그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큰 고기도 그 곳을 타고 넘지 못했단다. 어쩌다 이 급류(急流)를 타고 넘으면 그 물고기는 곧 용(龍)이 된다고 전해오는 그러한 곳 이란다. 누구나 용문(龍門)으로 오른다는 대단한 난관(難關)을 헤치고 올라가야 더 약진(躍進)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음이다."

우리의 고향사람 김회문씨.
그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이 날, 지금도 어머니 박희덕(82)씨와 함께 전주에 살고 계시는 아버지 김태일(84)씨의 눈물까지 글썽이며 진지(眞摯)하셨던 그 모습과, 그로 하여금 막걸리 한잔을 따르게 하셨던 그 의미(意味)에 관(關)하여 잊을 수가 없다고 술회(述懷)한다.

그의 교육(敎育)을 위하여 세 번째 학교를 옮기면서 들려주시던 그 말씀을 그는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간직하고 그가 지금 아버지께서 소원(所願)하셨던 그 만큼은 아니었어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그 만큼 노력하였노라 그렇게 들려준다. 그것은 후일 그가 훨씬 자라서 깨달았지만 나름대로 부모님의 그 날의 그것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였음을 그가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전주북중과 전주신흥고등학교를, 그리고 전북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를 마치는 동안 부모님들의 그 등용문(登龍門)을 넘기 위하여 또는 그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에 보답하기 위하여 그가 흘린 땀은 그의 인생에 거름으로 그의 연륜(年輪)에 새겨져 있다.

그의 뇌리(腦裏)에 주마등(走馬燈)으로 스쳐가는 그 많은 아르바이트의 현장(現場)은 고학(苦學, studying under adversity, 학비를 제 손으로 벌어서 공부함.)이라는 언어(言語)의 의미(意味)와 고학생(苦學生)이라는 위상심리학(位相心理學) 정립(鼎立)에 많은 시대(時代) 속으로 그를 함몰(陷沒)되게 하였을 것이다.

김회문씨는 여기서 후진(後晋)의 이한(李瀚)이 지은 《몽구(蒙求)》에 기록된 손강(孫康)의 이야기와 진(晉)나라 차윤(車胤)의 이야기로 가난한 사람이 반딧불(螢)빛과 눈(雪)빛으로도 열심히 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철학(哲學)을 그의 가슴에 간직한다. 그가 애초부터 간직하고 있었던 꿈 이였던 행정고시와 회계사 시험에 거듭 실패하고도 실망(失望)하지 않고.

그리고 외한은행 행원시험에 합격하여 1979년 1월 서울중부지점을 시작으로 전국의 본,지점과 일본의 후꾸오까, 오사까 지점을 비롯하여 해외지점 까지 방랑(放浪)하는 인생처럼 세월 따라 바람 따라 30여년의 시간들을 헤이면서 여기까지 왔노라 하고 그는 웃는다.

김회문씨는 이명희(경북상주,58년생)씨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었다. 그는 그 두 딸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사랑하라. 인내하라. 우애하라.』 그리고 그들 내외도 이를 지키려고 많이 노력한다.

그는 가끔씩 가족들과 함께 춘천을 간다.
유유히 흘러가는 소양강물을 내려다보면서 아내가 부르는 소양강 처녀를 듣는다. 춘천은 예나 지금이나 그에겐 청춘의 도시였고 낭만의 도시였다.

여기서 그는 아내를 만났고 그들은 사랑했고, 그리고 평생(平生)의 반려자(伴侶者)되기를 맹세했다. 일터 따라 방랑하던 그 세월동안 함께 방랑해 준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으로 뭉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도 그의 오랜 버릇이라고 했다. 태고(太古)와 억겁(億劫)을 이야기 하고 갈등(葛藤)과 화해(和解)가 수 없이 반복(反復)해도 그래도 그는 아내를 사랑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고향사람 김회문씨. 그는 아무리 어려워도 강한 의지(意志)와 긍정적(肯定的) 사고방식(思考方式)과 인내(忍耐)하는 마음으로 항상 우리의 곁에 있을 것이다.

설령 그 방법이 익숙하지 않고 서툴다 하더라도 실패하지 않겠다는 자신감(自信感)과 확신(確信)을 갖고 우리의 곁에 그렇게 오래 있을 것이다. <연락번호: 010-6361-6903>
/서울취재본부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