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새농민상, 상전면의 버섯박사 안기조씨

▲ 4월의 새농민상을 받은 안기조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산이 많고 평지가 적은 우리 군은 용담댐으로 인한 수몰로 알짜배기 농지가 물에 잠긴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적은 땅을 활용할 수 있는 특작만이 우리 지역 농업의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달의 새농민상을 받은 안기조(상전면·55)씨의 말이다. 안씨의 새농민상 수상은 적은 농토를 가지고서 특작을 통해 놀라운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지버섯과 상황버섯으로 연소득 2억 6천만 원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안씨의 수상은 높은 농업소득만으로 평가된 것은 아니다. 안기조. 그의 이름이 가진 무게는 쉽게 생긴 것이 아니다.

젊은 시절 잠시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안씨는 홀로 사시는 어머니를 모시고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땅 한 뙈기 없는 그에게 근면 말고는 그 어떤 희망도 일굴 수 없었다. 임대 농지에 인삼 농사를 시작한 그는 성실을 거름으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농작물은 그의 부지런함에 영락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1991년 인삼파동은 그의 부지런함을 단숨에 덮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인삼파동이라는 광풍에 쓰러졌던 안씨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했고 그래서 찾은 것이 약용버섯이었다. 서울 경동시장 한약방을 누비며 영지버섯의 가격변동을 파악한 그는 영지버섯의 전망을 낙관했다. 당시만 해도 '영지버섯은 이제 한물갔다.'라며 고개를 돌리던 때였다. 바보 소리를 들어가면 시작한 그의 영지버섯 농사는 그의 전략대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떨어진 영지버섯은 농가들에게 큰 피해를 안겨주었고 그러한 피해는 영지버섯 농사의 회피로 이어졌다. 생산 농가가 줄어든 영지버섯 시장은 자연스레 공급 부족으로 이어졌고 가격 상승은 필연적으로 따라왔다.

안씨는 이러한 시장 가격변동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몸으로 시작한 근면은 끊임없는 연구로 이어졌고 연구는 고소득이라는 예견된 성과를 낳았다.

안씨의 새농민상 수상은 고소득 달성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바로 지역 지도자로서의 역할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전국을 발로 뛰며 익힌 영지·상황버섯 재배 기술을 혼자만 움켜쥐지 않았다. 영지버섯 작목반을 구성해 자신의 기술을 반원들에게 전달했다. 영지버섯 재배 기술을 전수받아 부농의 꿈을 일구고 있는 농가들에게 그는 없어서는 안 될 신망 받는 지도자로 자리매김 됐다.

농협중앙회에서 제정하는 새농민상은 당연히 농협 사업에 대한 기여도도 한 몫 했다. 진안농협 이사이기도 한 안씨는 농협 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작목반원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농협 사업을 전적으로 이용해 줄 것을 홍보하기도 했다.

8천여 제곱미터 규모의 하우스에 영지와 상황버섯을 재배하는 그는 자신의 농사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지만 마을과 지역을 위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마을 이장은 물론이고 상전면 이장 대표, 으뜸마을가꾸기 추진위원장, 농협 이사, 작목반장 등 공익 활동도 마다지 않고 열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리 군이 농업 방향을 올바로 잡아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규모화를 통해 일궈지는 농업은 농토가 적은 우리 지역으로서는 경쟁력이 없습니다. 적은 땅에서도 가능한 부가가치 높은 특작이 아니고서는 평균 농가소득 향상은 구호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행정에서 농업 지원 정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해서 앉아서 지원만 원한다면 안 됩니다. 나눠먹기식 지원은 안 된다는 말입니다. 행정의 전반적인 농업 정책에 귀 기울이며 농민 스스로가 자구책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농민 스스로의 노력 속에서 군의 지원이 뒤따랐을 때 마중물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연구 노력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고히 다진 안씨는 이달의 농민상 수상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간 승리'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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