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2009 신춘방담(新春放談) 마지막
윤 영 신(서울타임스회장)

◆한 무제(漢武帝)가 분수강(江)가에서 인생(人生)의 무상(無常)함을 추풍사(秋風辭)로 노래하다.
 
추풍기혜(秋風起兮) 백운비(白雲飛)/초목황락혜(草木黃落兮) 안남귀(雁南歸) (가을바람 불어와 흰구름이 날아가네/푸른나무 누른잎 지고 기러기 남으로 돌아가네)
란유수혜(蘭有秀兮) 국유방(菊有芳)/회가인혜(懷佳人兮) 불능망(不能忘) (난초는 빼어나고 국화는 향기로운데/그리워라 아름다운 사람 잊을수가 없어라)
흘루선혜 제분하(濟汾河)/횡중류혜(橫中流兮) 양소파(楊素波) (물결위에 누선띄워 분하를 건너갈제/중류를 가로지르니 흰물결이 솟는구나)
소고명혜 발도가(發棹歌)/환락극혜(歡樂極兮) 애정다(哀情多) (피리불고 북을 처 도가를 불러라/환락이 이보다 더할소만 애달품은 이다지도 많은지)
소장기시혜(少壯幾時兮) 내노하(奈老何) (젊음이 얼마나 될고 늙음은 또 어이하리).
 

천하(天下)를 움켜 쥔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유철(劉徹)은 자신이 권세를 쫓아서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자신의 늙음이 그를 뒤 쫓아 오고 있었음을 알지 못하였고 그가 권력에 심취되어 자신을 잊고 있는 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스며드는 4차원적인 공황심리(恐慌心理)에 관하여 자신의 내면을 잊고 있었다.

오직 혼자만이 볼 수 있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그가 보았을 때에는 이미 그는 늙어 있었고 그나마 인간적 내면의 초라하고 비루한 그 모습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정인(情人) 이(李) 부인(婦人)마저 떠난 그에게 나눌 수 없는 것을 홀로 가지는 영화(榮華)보다 나누어야 하는 것을 홀로 받아들여야 하는 외로움이 더 서럽고 쓸쓸하게 인생무상(人生無常)으로 다가 온 것이다. 우리 누구라 그렇지 않을까.

인생무상을 가슴에 안고 사는 우리 모두가 이 우주(宇宙)의 조화(造化)에 윤회(輪廻)를 연
결하고 영겁회귀(永劫回歸), 생사유전(生死流轉), 그 미망(迷妄)의 세계를 본다.

우리는 앞서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에 관하여 이야기 했었다. 공자(孔子)를 시조(始祖)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우리는 유교(儒敎)를 꼽는다. 공자는 인(仁)을 인간사회의 도덕적 최고이념으로 한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실현을 그 목표로 하였고 그의 제자 맹자(孟子)는 인(仁)의 실천을 위한 의(義)를 내세워 본래 인간의 본성(本性)은 선(善)하다 하고 내면적인 도덕론을 펴고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다.

인간의 선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덕치(德治)로서의 왕도론(王道論)을 주장하였다. 이 사상이 수천 년 동안 유리학이며 정치학으로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진수(眞髓)였다.

원래 방담(放談)이란 무슨 특별한 철학이거나 사상으로 무장된 이야기들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생각대로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 마주앉아 이야기 하며 서로의 의견을 소통(疏通)하는 형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철학이든 정담이던 그것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종교와 철학을 하나로 보는 경향은 있었다. 불교철학이거나 힌두철학, 또는 유교철학들이 그런 것이다. 로마제국이 분열된 후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에 함락되고 천 년간의 중세시대에 나타난 교부철학(敎父哲學)이나 스콜라철학이 기독교철학으로 대신 되고는 있었지만 보편적인 철학과는 다른 형태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새해를 맞아 그간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종횡무진(縱橫無盡), 횡설수설(橫說竪說) 적어본 것뿐이다. 피안(彼岸)이란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사바세계(裟婆世界)를 떠난 열반상락(涅槃常樂)의 오성세계(悟性世界)로서 시공(時空)을 단절(斷切)하여 나타나는 타계관념(他界觀念) 현상을 말한다.
인간(人間)은 그 누구라도 마지막에는 혼자다. 오는 길이 그러했듯이 가는 길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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