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이야기 92 주천면 운봉리 구암마을

▲ 마을풍경. 구암마을은 구봉산 자락에 잠겨있다.
장군막대기를 꽂고
주천면 운봉리 구암마을에는 오래된 돌무더기가 있다. 커다란 종을 뒤집어 놓은 모양의 돌탑. 이 돌무더기 가운데 날카로운 돌조각이 꽂혀 있는데 툭 튀어나와 하늘을 향해 곤두섰다. 맞은편 삼밭에도 똑같은 돌조각이 흙더미 속에 박혀 있다.

'구암리 입석'이라 부르는 이 돌무더기는 10년 전에 만들었다. 동네에서 네 사람이 죽자 동네 사람들이 무당을 불렀다. 점을 쳤다. 무당은 돌탑을 쌓고 '장군막대기'를 두 개 꽂으라고 했다. 군인이 앞을 지나가다 이 기다란 돌조각에 글을 새겨준다고 했지만 동네사람들이 거절했다. 돌을 묻어 쌓은 뒤 제사를 지냈다. 마을에 무서운 일은 닥치지 않았다.

돌탑은 운봉교회 맞은편에 숨었다. 거대한 메타세쿼이아 도로변에 숨어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세대가 바뀌어 이 돌탑에 관해 아는 사람도 드물다. 마을 회관 앞에도 거북바위가 있다. 원래 거북이처럼 생긴 바위인데 더 정교하게 깎아 진짜 거북이처럼 만들었다.
앞산도 거북이를 닮았다. 거북처럼 동네 사람들도 장수했다. 아흔이 넘은 사람이 셋이나 된다.

▲ 마을주민 노분순(74)씨가 구암마을의 유래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구봉산 아홉 봉오리 위엔 구름이
마침 비가 그친 뒤라 산에서는 도랑물이 불어 옥수수밭을 흠뻑 적셨다. 구봉산 아홉 봉오리 위에도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구암마을은 예전과 달리 많이 변해 민간신앙의 발자취를 더듬기 쉽지 않다. 사람발길이 뜸했을 무렵에는 소를 몰고 수레가 지나 갈 길에 지금은 도로가 놓였다.

마을 회관에는 부침개를 부치고 있었다. 다시마를 물에 불려 부침가루를 적신 뒤 들기름에 지졌다. 꼬들꼬들 고소한 맛이 신선하다.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지금으로 말하면 국회의원여. 고을원님이었거든."

노분순(74)씨는 구암마을에 노 씨들이 많이 살았다고 말한다. 그이는 여덟 살 먹어 '국민핵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천초등학교. 십 리를 걸어 다녔다. 자신보다 네댓 살이 더 많은 언니들도 같은 학년에 학교를 다녔다. 3학년 2학기 때 일본 군인들이 구암마을에 들어왔다. 나라가 망했다. 먹을 것이 없어 콩깻묵(콩기름 짠 찌꺼기)을 먹고 살았다. 굶어죽게 생겨서야 배급이 돌았다. 사탕과 설탕이 들어왔다. 그때의 울분은 생활에도 스며들었다. "구룸마를 끌던 소가 주저앉으니까, 영감이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어."

해방이 되자 '인민군'이 들어왔다. 돈 많은 지주들의 돈을 빼앗았다.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시아제(시동생)는 경찰이었다. 장롱 밑에 땅굴을 파고 그 밑에 엎드려 수개월간 지내기도 했다. 살아남았다. 국군도 사람을 죽였다. 빨갱이란 명목으로 부모, 자식까지 잡아 생매장을 하거나 총으로 쏴 죽였다.

이념의 대립, 비뚤어진 역사의 광기가 미친 불길처럼 번져가던 때였다. 전쟁을 통한 '해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없다. 노 씨는 피난을 가는 바람에 잠시 구암마을을 떠나기도 했다. 언제 다시 정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나. 정처 없는 길이었다.
 

▲ 마을주민 김옥순(73)씨.
학교는 웃음소리를 기억하리
회관을 나섰다. 마을길은 잘 포장되어 있었고 비에 씻겨 깨끗했다. 간혹 무너지지 않은 토담이 보였다. 빈 집이 더러 눈에 띄었고 잡초가 수북했다. 마을 굽잇길을 돌다보니 빨간 양철지붕으로 된 집이 보였다. 지붕이 눈길을 끈다. 로마네스크 양식도 아닌 장식품이 무척이나 독특했다.

도화지에서 닭 모양을 오려낸 듯 보이는 달랑이는 물건. 마치 닭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홰를 치는 폼의 조각품이 매달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 닭들은 살아 있는 듯 움직였다. 도토리를 주워 먹는 다람쥐꼬리도 움직였다. 피에로가 갖고 노는 장난감처럼 작은 성탑도 보였다. 그림자놀이가 따로 없다.

발돋움을 하고 보려는데, 지나가는 주민이 말한다. "우리 예전에 살던 집 부수기 전에도 저런 게 있었어요." 참 재밌는 모양이라고 말하자 "이 마을에도 저런 집 몇 채 있었지."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며 지나가 버린다.

마을 입구 접시꽃이 담장보다 훌쩍 자랐다. 맞은편 도로를 건너 '구암정'에 이르렀다. 경쾌한 물소리. 이끼 낀 고목나무 줄기가 개울가에 늘어졌다. 오래된 나무들은 완전한 그늘을 만들었다. 회관 앞 돌거북이 물소리 따라 기어들어와 물장구를 칠까. 시원한 개울에 손목 한 번 담그고 쓰르쓰르 매미 소리까지 들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겠다 싶다.

저 멀리 낮고 펑퍼짐한 건물이 보인다. 그리로 올라갔다. '구봉초등학교' 간판이 눈에 띈다. 폐교다. 주천면 운봉리 182번지. <진안군향토문화백과사전>에 따르면 1952년 4월 9일 주천초등학교 운봉분교장으로 설치되었다. 원래 4개 학급이 있었지만 나중에 6학급으로 편성되었다. 들풀이 우거진 마당에는 풀벌레가 울었다.

하늘에 뜬 구름은 마치 거북모양으로 느리게 떠간다. 구름 사이로 비춘 햇살이 운동장의 빈 곳을 비추었데, 마치 이 폐교의 빛과 그늘을 말해주는 듯 했다. 이제는 찾는 이 없지만 학교는 떠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 폐교가 된 구봉초등학교 전경.

▲ 장군막대기를 꽂은 돌탑.

▲ 재미있는 지붕모양. 빨간 양철 장식품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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