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부귀면…친일거두 비석 기증"
위는 지난주 <진안신문> 1면 톱에 걸린 기사다. 내용인즉 부귀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던 '윤치호시혜불망비'와 '윤치호흥학불망비'를 윤치호가 친일파의 거두이기 때문에 친일청산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 기증했다는 기사로 기사의 위치와 문면으로 볼 때 그 일이 아주 당연한 일처럼 보이는 기사다.

하지만 그 기자는 당연하게 보았을망정 필자는 그 일이 비상식적으로 보이고 황당하고 분하기까지 하다. 같은 일도 사람에 따라 이처럼 180도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모양이다.

그럼 먼저 윤치호는 누구인가. 국사를 읽은 사람이라면 윤치호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는 명문호족의 가문에 태어나 격변기의 조선말 조정의 여러 중책을 맡기도 했으며, 서재필, 이상재 등과 독립협회를 조직하였으며, 독립신문사 사장이기도 했고, 장지연 등과 대한자강회를 조직, 회장이 되어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1910년 합방이후 일제가 날조했던 105인사건의 최고 주모자로 지목되어, 가혹한 고문과 3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출감한 이후 윤치호는 친일단체에 가입하여 변절했지만 당시 일제하라는 시대상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윤치호의 활동은 기독교분야, 교육분야, 사회사업분야가 중심을 이루어 여러 학교에 막대한 사재를 기부하여 우리나라의 교육진흥에 크게 기여했으며, 여타의 학교, 교회, 병원의 건축에도 많은 기부금을 희사했다. 부귀초등학교 부지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공과를 냉정하게 판단해야지 우리 민족에 끼친 그의 공로는 무시하고 변절했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선이 아니면 악이라는 이분법적으로 친일파로만 매도하는 것은 온당한 자세가 아니다.

우리는 친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친일 청산에도 의연하지 못하고 옹졸하기까지 하다. 몇년전 일제하 도지사를 지낸 사람의 비석을 두고 친일파의 비석을 세웠다고 비판하는 모 지방지의 보도 하나로 그 비석을 파묻는 소동도 있었다. 일제하 공직을 맡았던 사람들이라면 뉘라서 친일파가 아니겠는가. 현실은 일제하 일본군 장교였던 사람도 대통령을 해먹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이다. 그래서 꼬이고 꼬여 친일파의 후예들이 지금까지도 이 나라의 주류가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판이다.

이런 형편이니 아무리 친일의 흔적을 지우고자 하나 부질없는 일이다. 또 지울 필요도 없다. 친일의 흔적이 있더라도 그것도 역사이니만큼 차라리 그대로 두고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온당한 문화국민의 태도다.

더구나 그 비석은 그의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는 비석도 아니고 소작인에게 도조를 탕감해주고 학교부지를 희사한 그의 선행을 기록한 기념비일 뿐이다. 자신이 세운 것도 아니고 수혜자인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또 80년이나 흘러 향토의 귀중한 문화자산이다. 이런 물건을 몇몇 사람들의 판단으로 함부로 처분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이 비석을 가져간 민족문제연구소도 그렇다. 이 비석을 가져다 어디에 쓰려는가? "친일파도 이처럼 덕행이 있으니 용서하자"고 만천하에 광고하자는 의도인가?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이번 행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이 비석을 부귀초등학교장이 기증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교장은 그럴 권리가 없다. 주민들이 만들었으니 주민 총유에 속하는 물건이다. 그러나 이미 지방자치법상 면의 재산은 진즉 군유재산이 되었으니 처분하려면 군에 품의하고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러니 교장의 기증행위는 굳이 법률용어를 빌리자면 '권한 없는 자의 증여계약행위이므로 원인무효'가 되는 셈이다.

구구히 말하지 말자. 책임을 묻자는 것도 아니다. 비석을 돌려 받아와 소공원 같은 적당한 장소에 다시 세워야 한다. 그것이 내 고장 역사에 대한 후인들의 책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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