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약방 ☎432-4513

백운약방의 장훈석 약업사
건물에서 옛날냄새가 풍기는 장소나 상가를 발견하면 우선 들어가고 본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시골스러운 상가가 흔하지 않다. 흘려들었던 옛날이야기의 무대를 발견하는 것 같아 바로 주인을 찾는다.
차가운 피로회복제를 한 모금씩 넘기며 백운약방 약업사 장훈석(71) 씨에게 백운약방 이야기를 듣는다.

"약포에서 고약(연고), 생명수(소화제), 뇌신(두통약)만 팔았어."
의원도 약국도 없던 시절이었다.

장 씨는 "왜정 말엽부터 해방 이후까지인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약포를 하셨어. 그때는 매약청매상(약종상)이라고 불렀지."라며 자신이 3대째 그 뒤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백운약방을 비롯해 우리 군에는 4군데 약방과 약업사가 남아있다. 약 1967년 보건사회부에서 허가가 있는 사람에 한해서 몇 개월간의 교육을 통해 약종상이라는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 약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그때 자격증을 취득한 약업사다.

"우리가 죽으면 약업사는 없어지는 거지."라고 말하는 장 씨. 머지않아 약방, 약포라는 말은 책에서 읽거나 누군가에게 들을 수 있는 옛이야기로 남게 생겼다. 약방은 조제나 전문의약품도 팔 수 없고 일반의약품밖에 취급할 수 없다.

장 씨는 "지금은 풀빵 장사만도 못해."라고 말하지만 그의 말 속에 일에 대한 애착이 들린다.
올해 그의 나이는 71세.
"시골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 일에 자부심이 있어."

돈벌이를 떠나 의료취약지인 이곳을 지키며 젊은 날을 보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버스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쉬러 들어오기도 하고. 더운 날 자양강제 하나 사먹으며 서로 말 한 마디라도 부딪치는 동네 사랑방이다. 42년 동안 약방을 지키고 있는 그의 입에서는 역사가 흘러나온다. 이런 곳이 적어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문을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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