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 박동식 씨
박동식 씨
동향면 대량리 창촌마을 출신
서울메트로 옥수역 철도토목5급 대리
등산까페「수도권어울림산악회」운영자

잃어버린다는 것, 매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정말로 헤아릴 수 없이 큰 슬픔이라는 것을 그가 마음에 깨닫고 느낀 것이 그의 나이 열 두 살 적 이었으니 그의 가슴 속에 깊이깊이 숨어있었던 상실에 관한 슬픔에 대하여는 이해가 간다. 죽음으로 매우 소중한 것을 잃는 것도 극심한 슬픔인 것을 하물며 어느 날 소리 없이 곁에서 어머니가 없어졌다면 얼마나 충격적인 슬픔이었겠냐는 생각이 든다.
박동식 씨가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돌아 온 그가 어머니의 가출을 알게 된 것은 날이 어두워서였다. 그것은 그에게는 청천병력이었지만 그는 내색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슬픔은 비와 같다고 했다던가? 그것이 장미꽃을 피울 수도 있었지만 진흙탕을 만들 수도 있다는 법을 그가 가슴속에 새기고 살아오기 시작한 것이 그때 부터였으니 꽤나 일찍 철이 들었었는가보다고 박동식 씨는 그렇게 회고한다.

어떤 이가 말했었다. 슬픔은 감정이고 우는 것은 표출이라고. 그는 울지 않고 슬픔도 숨길 줄 아는 세월을 그렇게 살았다. 얼마 후에는 새로운 어머니가 들어왔고 그는 그 속에서 동향초등학교와 안천중학교, 그리고 안천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의 부친 박순도(32년생, 2001년 12월 사망)씨는 보훈가족으로 원호대상자로서 면사무소에서 평생을 마친 착하신 분으로 박동식씨는 아버지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많이 철들어 아버지의 정신적 고통과 가출한 어머니의 정신적 고뇌도 이해한다고 했다.

슬픔과 정신적 절망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그 수많은 세월을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살아온 박동식 씨는 감정의 표출을 숨기고 울지 않으면서 살아 온 그 슬픔의 크기를 어디에 비교할 수가 없다고 그는 그렇게 술회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를 찾아서 그가 무작정 상경한 것은 1978년 3월, 수유리의 한 철공소에서 일 년 동안 헤매는 생활도 헛되게 보내고, 그는 1979년 7월 군에 입대한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자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어머니가 자식을 낳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도 그 앞길에 놓여있는 그 센 바람과 큰 파도를 예측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일륜의 정에 향하는 어머니의 정을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박동식 씨는 슬프게 이야기 한다.

그가 하사 때 쯤 그의 어머니 신판순(71. 서울거주) 씨가 아들을 찾아서 부대로 면회를 왔더란다. 반갑고도 반가웠지만 그는 선뜻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때, 박동식 씨는 고등학교 적 익혔던 정한모 시인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 그의 상실의 슬픔도 어머니가 겪었던 힘겨운 삶도 어두운 지난날의 속죄도 모두 잊고 어머니는 용서를 빌었고 아들은 어머니를 용서하였다.

어머니는/눈물로/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의 씨를/아들들의 가슴속에서/벅찬 자랑/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드디어 눈이 부신/진주가 된다/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암흑이 광명을 몰아내듯이/눈부신 태양을/빛을 잃은 진주로/진주로 다시 쓰린 눈물로/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오늘도/어둠 속에서/조용히/눈물로/진주를 만드신다.

1985년 7월 육군중사 박동식 씨가 7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한다.
칼라현상소에서 조수로 몇 개월, 거기 연관되어 사진관을 개업하고 7년여의 세월, 그의 인생에 있어서 뒤 돌아 보면 참으로 한숨지으며 살아 온 세월이었다. 그 속에서도 1988년 3월에는 아내 정원옥(48.상주) 씨와 결혼하고 두 아이도 태어났다. 한때 처가조차도 사업에 실패하고 어려웠었던 그 시절에도 꿋꿋하게 버티면서 살아 온 아내의 내조에 관하여 박동식 씨는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한다고 그랬다. 쪽방에서 시작하여 일곱 번 이사하면서 그들이 오늘의 다가구 3층집에 이사하던 그 날, 그들 내외는 이 세상 모두를 다 얻은 듯하였다.

우리의 고향사람 박동식 씨.
이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보훈가족으로 서울메트로에 입사하고 오늘에 이른다.
그는 옥수역에서 철도차량운전면허증도 소지하고 철도토목5급 대리로서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서울 지하철 1, 2, 3, 4호선 134.9KM 구간을 117개역으로 하는 일일 삼백구십만 서울시민을 운영하는 시민의 발로서 안전하고 신속한 운행과 쾌적한 서비스 제공에 한몫하고 있다고 그는 자랑한다. 서울메트로는 청렴윤리 경영으로 2009년도 대한민국윤리경영종합대상도 수상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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