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군 마을만들기의 모범이 되고 있는 부귀면 봉암리 미곡마을

▲ 박경수 이장이 마을발전 청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있어야 마을이 있고, 마을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젖먹이에서부터 어린이, 청소년, 청장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이 마을을 구성해야 그 마을이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구성원 대부분이 노인이라면 그 마을이 언제까지 살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골 마을 대부분이 이농으로 인한 고령화로 그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모든 시골 마을이 고령화에 허덕이는 것은 아니다. 부귀면 봉암리 미곡마을(이장 박경수)은 젖먹이부터 어린이, 청소년, 청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살고 있다. 시골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미곡마을의 이러한 구성원 분포가 늘 그래왔던 건 아니다. 미곡마을도 예전에는 여느 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한 마을에 귀농하는 이들이 한 집 두 집 생겼고 그들의 자녀가 마을에서 뛰놀게 되자, 어느덧 마을은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생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생기는 또 다른 생기를 불러들여 미곡마을엔 현재 다섯 가구의 귀농인이 살고 있으며 올해 안으로 세 가구가 더 들어온다.
 

▲ 지난해 마을축제 때 외부의 도움없이 마을주민들이 직접 첨여해 완성한 벽화. 전래동화를 소재로 그렸다.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변화의 시작
미곡마을은 지난 2008년에 시작한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를 시작으로 마을만들기에 뛰어들었다. 군에서 지원하는 사업비로 마을 모정을 짓고 선돌과 장승을 세우는 등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마을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만들기는 단순한 부역이 아니었다. 전체가 잘 살 때 그 구성원인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공동체의식이 밑바탕에 깔리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미곡마을 사람들은 나이를 초월해 교육에 참가했다. 마을공동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업 방향에 대한 연대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30여 가구인 미곡마을에서 25명 정도의 사람들이 타 지역에서 진행하는 교육에 꾸준히 참여했다고 하니 마을 주민들의 열의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었다. 교육 탓이었을까. 미곡마을은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러한 평가는 진안군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으뜸마을 가꾸기'에 선정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에 선정됐다는 것은 마을에 행정의 예산이 투여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예산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마을에서 결정할 문제였다. 그 결정의 결과는 마을 주민들이 얼마나 교육을 받고 뜻을 모았느냐에 따라 나타났다.

미곡마을는 주어진 사업비로 마을도서관을 만들었다. 더 많은 귀농인의 정착을 돕고자 '귀농인의 집'도 지었다. 미곡마을에는 현재 신생아부터 어르신까지 인구 분포가 고르다. 유아 5명, 초등학생 6명, 중학생 5명, 고등학생 3명 등 총 19명 아이들이 있다. 마을 전체로 보면 50대까지의 연령이 45%를 차지한다. 회갑이 되어도 젊다는 소리를 듣는 여느 마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선돌.
◆마을축제로 주민참여 되살아나
나이대가 고른 만큼 마을일도 어느 그룹에 치우치지 않는다. 마을 모정을 지을 때 70대 할머니까지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거드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마을 주민들의 참여는 작년에 있었던 마을축제 때 확연히 드러났다.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을 통해 공유했던 마을공동체 의식이 마을축제를 준비하면서 올곧이 되살아났을 뿐 아니라 더욱 견고히 다져졌던 것이다. 미곡마을의 마을만들기는 여느 마을처럼 마을 지도자 한 두 사람에 의해 추진되지 않았다. 체계가 없는 듯 어수선한 마을회의였지만 주민 각자가 내놓는 어설픈 의견들은 무시되지 않았다. 자신들이 내놓은 의견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을회의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 소박한 의견들이 한 여름 밤의 마을축제 프로그램을 메웠던 것이다.

그 때의 마을축제에서 미곡마을 사람들 가슴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 생겼다. 바로 마을의 희망으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공연이었다. 어린아이부터 청소년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은 이 때 만큼은 한 동아리를 이뤘다. 마을 주민들이 관객이 된 무대에서 마을 아이들이 난타 공연을 하고 연극을 보여줬다. 특히 연극에서는 마을 어른들 개개인의 특징을 등장인물과 접목시켜 마을 어른들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어른들이 즐거워했음은 물론이고 연극을 하는 아이들 또한 마을 어른들을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미곡마을이 경험한 마을축제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다. 축제 준비를 위해 한 달간, 아이들은 연극과 난타 연습에 매달리고 할머니들은 술 담그기에 정신없으시고 청장년들은 여러 시설을 만드는 데 서로 협력했다. 마을 주민 스스로가 즐겨보자고 참여했던 마을축제가 이런저런 준비과정을 통해 이미 그 맛을 보았고, 그 결과를 통해 서로의 잠재력을 확인한 것이다. 이 모든 게 돈으로 일궈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사람이 있었기에, 그 관계성이 살았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외형적인 성과 보다 과정 속에서 주민 스스로가 즐거웠던 게 미곡마을이 경험한 마을축제였다.
 

▲ 마을축제 때 유용하게 쓰인 시설에서 주민들이 쉬고 있다.
◆마을주민이 나눌 수 있는 구조
미곡마을은 올해부터 농림부가 지정하는 '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도 진행한다. 이 사업을 통해 방문자센터, 체험농장, 물놀이장, 목공체험, 효소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곡마을의 진짜 희망은 지원 사업이 아니다.

미곡마을은 노인,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미곡마을은 마을을 법인화할 계획이다. 마을을 법인체로 등록해 마을공동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을 법인에 적립시키고 주민에게 배당해 생계에 불안해하지 않는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일한만큼 가져가는 구조가 아닌, 좀 덜 일해도 마을공동체 일원이기에 함께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마음은 있어도 몸이 따라 주지 않아 노동에 덜 참여하는 이가 있어도 마을에서 외면하지 않고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 모든 구조가 마을 법인을 통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후를 마을이 책임지는 것이다.

마을 영농법인에 이미 마을주민의 90%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도시로 나가 살고 있는 자녀도 향후 부모가 돌아가시면 부모와 똑같은 조건으로 법인에서 지분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에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인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현재 25평 되는 '귀농인의 집' 한 채를 완공했다. 미곡마을 골짜기 어디에나 집터를 마련할 수 있기에 귀농을 원하는 이가 있으면 귀농인의 집에 머물며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집짓는 데는 마을 주민들이 도와주고 그 도움으로 인해 얻게 되는 금전적 이익은 어느 만큼 마을에 기부하는 형태를 꿈꾸고 있다. 현재 30호 정도 되는 미곡마을은 귀농인으로 인해 100호가 넘는 마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 마을 어르신들은 관행농업을 하고 있지만 젊은층을 중심으로 유기농이 아니고서는 농촌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단합된 분위기라면 어르신들을 유기농으로 이끄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박경수 이장은 말한다. 미곡마을 전체가 유기농마을로 변신하게 된다면, 그 청정 이미지로 귀농인들이 갖고 있는 도시 인맥을 통해 농산물 유통은 어렵지 않다는 게 박 이장을 비롯한 이 마을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마을만들기 실험이 한창인 진안군에서 비교적 뒤늦게 마을만들기에 뛰어든 미곡마을. 미곡마을의 마을만들기 실험은 다양한 연령의 구성에 힘입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를 차근차근 현실화시키고, 그 모습에 공감한 이들이 새록새록 모여든다면 미곡마을의 모습은 진안군 마을만들기의 모범이 될 것이다.

▲ 미곡마을 회관
▲ 미곡마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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