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다음은 나치 치하를 경험했던 어느 목사의 회고담이다.
"나치가 의회를 장악했을 때 분노는 했지만 직접 관계된 일이 아니라서 방관했다. 다시 나치가 학원을 장악하려 했을 때도 분노는 했지만 직접 관계된 일이 아니라서 방관했다. 나치가 교회를 장학하려 했을 때는 분노와 더불어 항거하려 했지만 이미 의회나 학원이 무너진 터라 고립무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가 지방선거전 5월 25일 아침 CBS '이종훈의 뉴스쇼'에 출연해 언론의 역할과 관련해 "지금 천안함 사태에서도 보셨지만 야당이 아무리 목청을 돋우고 주장하고 해도 언론이 완전히 장악돼있고 권력을 모두 한나라당이 쥐고 있기 때문에 견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사실이 그렇다. 조중동 같은 신문들은 현 정부와 정파적 이해가 맞아떨어져 그렇다고는 해도 공영방송인 KBS나 MBC, 뉴스채널인 YTN, 심지어 교육방송인 EBS나 방송중계사업자인 스카이라이프 사장까지도 많은 비난과 저항을 무릅쓰고도 기어이 MB 측근을 심어놓은 상태다.

비교적 진보적 신문이라고 하는 '한겨레'나 '경향신문' 등은 정부의 광고 감소 등 교묘한 고사작전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현안이 되어 중대한 이슈에 대하여도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 지경이 되도록 제1야당은 뭘 했느냐는 지적이 뒤따른다. 물론 방송장악과 미디어관련법 등에 야당은 분명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미디어법이 강행 통과되자 대표가 단식을 하는 등 반대투쟁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4대강 공사가 초법적으로 진행되고 공권력 남용으로 민주주의가 유린되는 현실이라도 언론은 모른 척 하거나 아예 정부를 역성들고 나서지만 야당의 역할이나 존재는 찾기 힘들었다. 그나마 야당에 우호적이던 진보신문들이 경영난을 겪어 필봉이 무디어져도 야당은 그를 살리기 위한 대책 한 번 마련해보지도 않았다. 여기에서 의식 있는 국민들은 한없는 무력감을 맛봐야만 했다.
이처럼 야당의 존재감 상실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독선적 국정 운영과 강공드라이브에 염증을 낸 국민들도 그 대안으로 쉽사리 민주당을 택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번 천안함 사건에서도 제1야당은 한없이 무력했다. 단순사고이든 북한의 소행이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곳은 군이고 정부인데 야당은 이런 정부의 잘못을 제 때에 제대로 추궁해보지도 못했고 따라서 정부와 군의 언론플레이에 놀아나게 하는 빌미를 주어 패군지장들이 저처럼 의기양양하게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발표를 하도록 하여 보수언론들이 북풍을 있는 대로 불러일으키고 선거의 이슈는 완전히 묻혀버리도록 한 일은 야당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고만 할 수도 없다.

오죽하면 조선일보는 5월 26일 "천안함 사태는 야당에 불리한 사건만은 아니었고 적절히 활용했더라면 얼마든지 호재로 사용할 기회를 실기하였으니 이번 지방선거에서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더라도 북풍 핑계를 대서는 안 된다"고 조롱 섞인 평론을 실었을 정도다.

결과적으로 이번 6.2지방선거에서는 친 정권 언론들의 여론몰이, 천안함사건 등은 오히려 역풍이 되어 여당이 참패하고 민주당이 대승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정부여당의 독주와 독선에 돌아선 민심의 반사이익을 챙겼을 뿐 이 가운데 민주당이 한 역할을 별로 없어 보인다.

민주당은 현재 야당이다. 야당은 야성(野性)을 갖추어야 한다. 야성이란 거칠고 사납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정권이 부당하게 KBS나 MBC, YTN 등 방송을 장악하려들 때에 사생을 결단하고 싸워 지켜냈어야만 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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