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이야기 109 성수면 중길리 오암마을

▲ 오암마을 최영복 이장

삼일 째 내리는 봄비에 조용한 시골 마을은 더욱 조용하다. 오암마을 마을회관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관촌장이 열린 10일에 마을 엄니들은 거의 대부분 장을 보러 나가신 듯하다.

성수면 중길리는 관촌과 근접한 곳에 위치하고, 진안으로 나가는 버스보다 관촌으로 나가는 버스가 많아서 주로 관촌장을 이용한다. 예전 마령장이 컸을 때에는 황소마재를 넘어 마령장을 이용했다고 한다.

마을 고샅길을 걷다보니 반겨주는 것은 강아지 짖는 소리뿐이다. 부엌 창문 사이로 텔레비전 소리가 들린다. 부엌을 돌아 마당에 들어서니 가지런히 놓인 털고무신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청소를 하던 엄니 한 분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1966년에 결혼하여 오암마을로 들어와 산지 44년이 된 홍남희씨(63세)다.

"만날 만날 재밌지. 회관에 전부 모여 밥도 해먹고, 화투도 치고, 수다도 떨고."
행복이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마을의 유래
성수면 중길리 오암마을은 김해 김씨, 경주 이씨, 제주 고씨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본래는 와우(臥牛)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우암(牛岩)이었으나 하달에서 오암마을 뒤에까지 뻗어내린 산세가 지네혈이어서 오암(蜈岩)이라 하다가, 다섯 가구에 의해 마을이 형성되어 오암(五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텃골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1866년 대원군의 쇄국정치에 따라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 탄압인 병인박해가 있었다. 이때 박해를 피해 진안 지역은 성수면 텃골, 백운면 동창, 마령면 대평리, 한실골, 널티, 부귀면 활목, 서촌, 방각리 등의 두메산골로 피해 들어와 살았다. 텃골 혹은 터골이라고도 부르며 예전에는 기동이라고도 불렀다.

김영호(56세) 씨는 "텃골에 4가구가 처음 들어와 살면서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유지해갔죠. 그러다가 점차 자손이 생기면서 여기로 터전을 옮기게 되었지요. 6.25이후에도 1975년까지 3가구가 남아 살다가 이후 모두 객지로 떠나면서 현재는 집터만 남아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껏 토박이로 살고 있는 김은옥(71세) 씨도 그때 마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1970년 3월 3일, 마을 아이들이 빠끔쟁이를 하다가 오동나무에 불이 붙어 버렸어. 그래 그것이 불꽃이 되어 버려갓고 초가지붕으로 날리면서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어. 그 당시 천주교 공소가 마을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천주교 공소만 유일하게 불길을 피해 집터는 남았지. 불이 난 후에는 말도 못혀. 공소에 마을 사람들이 전부 모여 진안군에서 식량 3홉씩 나눠 주면 그걸로 생활하고 그랬지."

마을이 불길에 휩싸였던 그 후에 군의 지원으로 지금의 가옥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오암 마을은 천주교 김대섭 주교의 출생지이며, 천주교 공소를 설립하여 마을 주민들을 교화하기 시작하였다. 현재까지 천주교 공소가 운영되고 있는 천주교 교우촌 마을이다.
 

▲ 한여름 농부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나무는 한겨울을 잘 버티어내고 다시 그 자리를 내줄 것이다.

◆친환경 농사로 짓는 건강한 밥상

오암마을은 2000년 친환경단지 조성사업, 2005년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다. 또한 2008년부터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민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공동 숙박시설인 체험마을 방문자센터도 지었다. 방문자센터는 2층 규모로 객실수 4개에 수용인원은 40명이다. 이 외에도 교육장, 샤워실, 화장실, 에어컨 시설 등을 갖추었다.

오암마을 최영복(48세) 이장은 "우리 마을은 친환경 농산물 위주로 재배를 하기 때문에 안전한 먹을거리 제공으로 도시민과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며 "포근한 산골 마을에서 도시민들이 스트레스를 날려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관에서 밥 먹고 가."하는 홍남희씨를 따라 회관으로 갔다.
"관촌서 1시 버스 타고 들어오면 여그서 다 밥 먹을 거야. 그니까 가서 밥 해놔야 돼."라고 말하는 홍남희씨의 손길이 바빠진다.

냉동실에서 동태 한 마리를 꺼내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홍씨의 손길이 닿는 순간 이내 한 상이 차려졌다. 점심 때가 되니 몇몇 어르신들이 회관으로 들어오신다. 조촐한 점심상이지만 함께 나눌 수 있어 즐겁다.

여름이 되면 서로 얼굴 볼 사이도 없이 바쁘지만 겨울이 되면 회관에 모여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것이 하루 일과이다. 시골에서의 하루하루가 폭폭하다고는 하지만 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 속에 비치는 인심이다.
오늘 저녁 오암 마을회관에는 장을 보고 오신 주민들의 이야기로 시끌벅적 할 것이다.

▲ 마을 고샅에는 담장에 그려진 우산만이 외로이 비를 맞고 있다.
▲ 장을 보러 나가신 어머니들 덕에 조촐한 밥상을 함께 했다.
▲ 도시민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체험마을 방문자센터.
▲ 다섯가구에 의해 마을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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