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덕샷슈상사

▲ 남원에서 의뢰가 들어 온 공사로 전화는 바쁘지만 이권섭 씨는 여유있는 마음으로 일하려고 한다.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것들이 필요하지만 샷슈를 빼놓을 수 없다. 샷슈 만드는 일을 25년이나 고집해 온 이권섭 씨(52)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대학교를 진학하느냐 직장을 다니느냐를 가지고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 직장을 선택하기로 하고 아는 형님 소개로 수입품 무역회사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와서 틈틈이 도와주던 형님 가게 일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27살부터 하게 된 샷슈일을 지금까지 하게 된 것이다.
용덕이라는 이름은 이씨의 형님인 이용덕씨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용덕샷슈상사에서 하는 일은 단지 샷슈 만드는 일에 끝나지 않는다. 자전거 보관대, 건물 구조물, 장애인 손잡이, 비가림 시설, 가로등 지지대 등 건물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한다. 컨테이너 조립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시공을 하기도 한다. 전라도권내 주문이 들어오는 일은 어디라도 출장을 간다. 먼저 견적 의뢰가 들어오면 견적을 뽑아 시공까지 직원 2명과 설비기사 3명이 이 씨와 함께 한다.

"우리 일이 대부분 시끄러워요. 그래서 관공서 같은 경우에는 사람이 없을 때에 일을 해요. 새벽 4~5시까지 일할 때도 있어요."
큰 장바가 들어오면 홈을 파서 용접하는 일까지 가게 안은 이씨의 손길로 가득하다. 이씨를 졸졸 따라다니는 두 마리의 개는 이씨가 가는 곳이면 어디라도 간다.

"개를 묶어서 키우면 더 사나워요. 저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자기 목숨이 그것밖에는 안 되는 거겠지요."
물 흐르듯 거스리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믿고 사는 이씨이다.
"젊어서 한 선배가 그런 말을 해줬어요.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에서 나오고,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 그 말이 아직까지 마음에 많이 남아요."

돈이 많은 부자이기보다는 마음의 부자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이씨는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남모르게 봉사활동도 많이 한다. 그러나 굳이 그런 일들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며 사는 이씨의 믿음 때문이다.

이씨는 34살, 다소 늦은 나이에 세 살 아래 여수 아가씨와 결혼을 하여 세 남매를 두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미국에 사는데 자녀를 유학 보내라고 했단다. 그러나 이씨는 보내지 않았다.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어요. 외국에서 그렇게 혼자 자란 아이들은 내가 보니까 정이 없더라구요."

주변에서는 그런 이씨를 보고 그 좋은 기회를 놓쳤느냐며 말이 많았다. 그러나 이씨는 단호했다. 아이들에게도 내 것, 네 것을 구분하지 않도록 교육시킨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마음에 정이 가득한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이씨의 생각 때문이다.

진안을 떠나자고 하는 부인의 말에도 이씨는 떠날 생각이 없다. 실제로 전라도권내로 일을 많이 가기 때문에 전주로 나가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러나 진안이 고향인 이씨는 진안을 떠날 생각이 없다.
"사람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아요. 고향이 좋은 것이 그런 거 아니겠어요."

내가 먼저 도움을 줄때 타인도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씨의 웃음 가득한 얼굴에 피는 주름은 이씨의 삶에 대한 고집과 믿음 때문에 한층 더 아름다워 보인다.

▲ 용덕샷슈상사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지나가는 길에 따뜻한 난로 옆에서 커피 한 잔 나누는 것이 바쁜 일상 중 하나이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