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 갈 곳 없는 아이들

▲ 학교폭력예방에 대한 플랜카드는 걸려있지만 그 어떤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며칠 전에 선배 언니들끼리 시비가 붙었어요. 그래서 한 언니가 눈 밑이 찢어져서 병원에 갔다 왔어요."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일이 아닌,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다. 어른들이 쉬쉬하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어디에선가 미처 풀어내지 못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농촌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서울 등지의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의 문제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지역이 좁다는 이유로 자꾸만 감추려고 하기에 문제는 더 크게 확산될 우려도 있다. 또한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면 혹은 크게 표면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아니라면 덮어두고 가려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고인 물은 언젠가는 썩게 마련이다. 그 사이 우리 아이들은 점점 마음의 문을 닫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자신들만의 공간과 기억 속으로 숨어들 것이다.

그래서일까? 가해 학생도, 피해 학생도 아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면을 통해 과감히 밝혀보려 한다. 어떤 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인상을 찡그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상 한 번 찡그리고 나서 행복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지만, 상처를 받았던 아이들이 다시 한 번 상처를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말문을 연다.
 
◆쉬쉬하는 동안 병들어가는 아이들
작년 성매매를 했던 한 여학생이 학교에서 전학 권유를 받고 타 지방으로 전학을 갔다. 의무교육인 중학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학만 시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
J중학교에서는 올 봄 타 지방에서 전학을 온 남학생이 후배들에게 흡연을 권유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후배들은 선배에게 맞는 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는 흡연을 경험하게 된다. 학교 입장은 전학 오겠다는 학생을 막을 수도 없지 않느냐는 태도이다. 그러나 전학을 못 오게 하고 흡연을 막고 단속한다고 해서 해결되어지는 문제일까?

한 고등학교에서는 최소한 일 주일에 두 번 이상은 최고 학년이 학생들을 소집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소위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발로 정강이를 걷어차기도 하고, 인사 안 한다고 시비를 걸기도 한다. 그 아이들이 왜 그럴까?

가출을 일삼는 중학생들도 있다. 4명이 함께 다니는 이 중학생들의 가출은 이번이 4번째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려는 것을 버스를 세워 붙잡아 왔다. 이 중 세 명이 타 지방에서 전학 온 아이들이다. 한 학교 선생님은 "봄바람 난 거지요, 뭐."라고 말한다. 봄바람이 난다고 전부 가출을 하지는 않는다. 이들 학부모 중 자식을 아예 포기한 학부모도 있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은 읍내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은 가기 싫고, 갈 곳은 없다. 10시 이후에 청소년 금지라는 안내판은 있지만 PC방 입장에서는 이익을 보기 위해 낸 가게이기에 규제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주인의 말이다.

◆대안은 없는가
7년 전에 진안으로 와서 두 아이를 키우는 한 학부모는 말한다.
"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전학 시켰는데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어요. 왕따는 아이의 영혼을 말살하는 일이에요."

왕따라는 말은 1997년에 잇따른 중, 고등학교폭력관련 언론보도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급격히 대중화되었다. 이제는 마치 자연스러운 학교문화처럼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왕따로 인하여 자살까지 생각하는 학생이 있다. 장애를 가진 아버지 밑에서 자란 한 고등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왕따를 당했다. 어릴 적부터 단 한 번도 '하지 마'라는 말을 해 본적이 없다.

상담을 통해 지금은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진로를 선택한 학생을 상담했던 청소년 지원센터 허은하 선생님은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지난 한 해 진안군에 접수된 학교폭력은 폭행 1건이지만 학교폭력이라는 것이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상해를 입힌 것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은연중에 이루어지는 학교 폭력은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이나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행위이다. J중학교 한 선생은 "아이들이 말하지 않으니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학교에서 상담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상담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입을 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공부만을 강요하는 학교에서 쉽게 마음을 연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저 단속하는 것 이외에는 대안은 없는 것일까?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둔 한 학부모는 "최소한의 단속이 필요하다. 학교 선생님들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읍내를 돌아다니며 단속하는 성의를 보였으면 한다. 또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를 문제아라고만 보지 말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문제아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환경은 너무나 무자비하다. 무작위하게 흡수되는 대중문화, 편부모 밑에서 방치되는 아이들, 갈 곳이 없어 찜질방과 PC방을 전전하는 아이들이다.

청소년지원센터 김기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나 선생님이나 아이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아이들만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는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대상으로는 자존감을 향상시켜주어야 하고, 부모와 선생님들은 대인관계를 풀어나가는 기술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학교, 학원, PC방 같은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의 심리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규제와 단속을 강화하면 할수록 더욱 반발 심리가 생긴다.
진안에 청소년 수련관과 청소년지원센터가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들어가기에는 아직 그 문턱이 너무 높다. 열린 공간에서 아이들이 닫혀 있는 자신의 마음을 풀어내고, 표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최소한 어른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먹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교폭력이나 문제아라는 단어가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는 세상이 오기를 꿈꾸는 것은 헛된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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