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주민의 삶과 같이 해 온 우화정류소

▲ 단 몇 분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정류소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시골 버스정류소는 도시와는 다르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간은 아니지만 주민들의 사랑방이며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이기도 하다.

지역주민들의 사랑방, 그리고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이기도 했던 우화정류소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영재(62), 박영애(56)씨가 처음 정류소를 낸 것은 1990년 10월이었다. 진안읍 단양리 외사양마을이 고향인 이씨는 처음에는 양복점을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몸이 안 좋아서 이곳 정류소가 있는 집을 사서 정류소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리 편한 일이 될 수 없었다.

"일 년에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요. 무조건 아침 6시 30분에는 문 열고 9시 30분까지는 열고 있어야 해요. 집에 경조사가 있어도 참석하기가 힘들어요. 명절 때에는 아침에 잠깐 차례 지내고 다시 문 열고 그래요. 인내심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에요."

정류소는 기다림의 공간이기도 하다.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소변이 보고 싶은 할머니는 그 사이 버스를 놓치고 또 다시 버스를 기다린다. 손님뿐이 아니라 정류소를 지키고 있는 주인에게도 기다림은 마찬가지이다.

이씨가 앉아 있는 티켓박스 위로는 버스정류소의 시간과 같이 한 거울과 칠판이 걸려있다. 지금은 전주로 나가는 버스표만을 팔다보니 전주 시간과 마령 가는 시간만이 적혀 있다.

"3년 전부터 군내 버스표는 안 파니까 안 적어요. 처음에는 손님들이 많이 물어보니까 적어 놓았는데 지금은 그것도 버겁더라구요."

그런데 이제 그 버거움마저 못 느끼게 될 상황이 왔다. 정류소 앞으로 4차선 도로가 계획되면서 정류소를 닫아야 하는 것이다.

"이전비까지 합하면 5천만 원이 안 되는데 그걸로 마땅히 갈 곳이 없어요. 택시 승강장은 만들어 주면서 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버스 정류소를 폐쇄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도로라는 직선은 인간이 편리를 위해 만들어 낸 길이다. 그러나 그 편리가 주민이 불편하게 느낀다면 그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자가용 비율이 늘었다고 해도 진안군 인구의 많은 수를 차지하는 노인들과 학생들은 아직 버스를 이용한다.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여, 아픈 무릎을 절룩거리며 버스터미널까지 가기에는 너무 먼 길이다. 추운 겨울 따뜻한 난로 앞에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들의 사랑방인 버스정류소는 그냥 정류소가 아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버스표를 파는 사람이나 모두가 삶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온전히 견디어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조그마한 시골에서 편의를 위한 개발이라는 논리로 자꾸만 없애려고만 한다.

"우리가 뭐 힘이 있나요? 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그래도 아쉽죠.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인데…."
자꾸만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들을 사람들은 박물관에나 넣어두려고 한다. 사람의 생명은 끊어지더라도 공간은 기억의 흔적으로 존재한다. 그 공간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살리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20년 동안 주민들 삶의 시간과 같이 해 온 우화정류소가 정말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갇혀 있게 될까?

▲ 20년 동안 주민들의 발이 되어 준 우화정류소, 이제 사람들의 기억속에 묻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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