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주민의 삶과 같이 해 온 우화정류소
지역주민들의 사랑방, 그리고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이기도 했던 우화정류소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영재(62), 박영애(56)씨가 처음 정류소를 낸 것은 1990년 10월이었다. 진안읍 단양리 외사양마을이 고향인 이씨는 처음에는 양복점을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몸이 안 좋아서 이곳 정류소가 있는 집을 사서 정류소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리 편한 일이 될 수 없었다.
"일 년에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요. 무조건 아침 6시 30분에는 문 열고 9시 30분까지는 열고 있어야 해요. 집에 경조사가 있어도 참석하기가 힘들어요. 명절 때에는 아침에 잠깐 차례 지내고 다시 문 열고 그래요. 인내심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에요."
정류소는 기다림의 공간이기도 하다.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소변이 보고 싶은 할머니는 그 사이 버스를 놓치고 또 다시 버스를 기다린다. 손님뿐이 아니라 정류소를 지키고 있는 주인에게도 기다림은 마찬가지이다.
이씨가 앉아 있는 티켓박스 위로는 버스정류소의 시간과 같이 한 거울과 칠판이 걸려있다. 지금은 전주로 나가는 버스표만을 팔다보니 전주 시간과 마령 가는 시간만이 적혀 있다.
"3년 전부터 군내 버스표는 안 파니까 안 적어요. 처음에는 손님들이 많이 물어보니까 적어 놓았는데 지금은 그것도 버겁더라구요."
그런데 이제 그 버거움마저 못 느끼게 될 상황이 왔다. 정류소 앞으로 4차선 도로가 계획되면서 정류소를 닫아야 하는 것이다.
"이전비까지 합하면 5천만 원이 안 되는데 그걸로 마땅히 갈 곳이 없어요. 택시 승강장은 만들어 주면서 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버스 정류소를 폐쇄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도로라는 직선은 인간이 편리를 위해 만들어 낸 길이다. 그러나 그 편리가 주민이 불편하게 느낀다면 그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자가용 비율이 늘었다고 해도 진안군 인구의 많은 수를 차지하는 노인들과 학생들은 아직 버스를 이용한다.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여, 아픈 무릎을 절룩거리며 버스터미널까지 가기에는 너무 먼 길이다. 추운 겨울 따뜻한 난로 앞에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들의 사랑방인 버스정류소는 그냥 정류소가 아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버스표를 파는 사람이나 모두가 삶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온전히 견디어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조그마한 시골에서 편의를 위한 개발이라는 논리로 자꾸만 없애려고만 한다.
"우리가 뭐 힘이 있나요? 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그래도 아쉽죠.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인데…."
자꾸만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들을 사람들은 박물관에나 넣어두려고 한다. 사람의 생명은 끊어지더라도 공간은 기억의 흔적으로 존재한다. 그 공간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살리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20년 동안 주민들 삶의 시간과 같이 해 온 우화정류소가 정말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갇혀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