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에서나 필요한 사람 될 것
어느 분야에서나 필요한 사람 될 것
  • 진안신문
  • 승인 2010.11.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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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향 사 람

▲ 허광태 씨
허 광 태 씨
·상전면 용평리 운암마을 출신
·민주청년연합양천구회장 역임
·민주당중앙위원 역임
·고려학원이사장/허광태 웅변학원장 역임
·4, 5, 8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주)에스에스닷컴 대표이사
·제8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장(현)
·재경진안군민회자문위원


필자가 우리의 고향사람 허광태씨와 교유(交遊)하기는 10여년이 조금은 넘은 듯하다. 우선 그를 만나면 그에게서 물신 풍겨오는 인간의 내음을 느낀다. 여기서 인간이라는 용어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은 있다면 우리는 그냥 휴머니즘(humanism)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그것은 우리가 흔하게 인간주의(人間主義) 또는 인문주의(人文主義), 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 표현하는 참으로 「인간다움」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허광태씨는 필자에게 자신의 조부(祖父)께서 그에게 일깨워 주신, 그래서 자신이 그것을 전설처럼 지켜가는 가장 현실적 언어로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의 조부께서는 당시 무학자(無學者)였으나 집안에 머슴을 둘씩이나 거느리던 인동(?洞)에서는 꽤나 경오(警悟)가 밝으셨던 분이셨다고 집안의 자랑처럼 들려주었다. 집안 슬하(膝下)에 내린 그 할아버지의 좌우명이 이랬단다.

「첫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라. 둘째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셋째 걸인(乞人)도 손님이다.」
후일 허광태씨가 성장하여 천주교에 귀의(歸依)하였을 때 자신의 세례명으로 프란치스코 성인(聖人)을 선택한 것도 평화를 향한 사도의 사명을 다 하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하고 필자는 그렇게 생각이 된다. 전대(纏帶)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을, 식량자루나 여벌옷도 자기 것으로 탐하지 말 것을 강조한, 가난한 성인 프란치스코를 지금 허광태씨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도 오늘의 우리네 정치풍토에서 청빈(淸貧)한 삶을 살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운명의 여신처럼 행운으로 그의 곁에 다가서는 것을 필자는 본 것이다.

우리의 고향사람 허광태씨. 그는 양천 허씨 30대손이다. 그들의 선조들은 역사에 기록된 씨족답게 선조유교(先祖遺敎)로서「가전충효(家傳忠孝)」「세수청백(世守淸白)」을 세세손손 전하고 있다. 허씨(許氏) 성(姓)의 유래는 삼국유사 기이(紀異)제2권 가락국기(駕洛國記)에 기록되어 있다. 2세기경 고대국가 가야시대에 비롯되었다고 한다. 가락국 김수로왕은 인도에서 건너온 야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아 열 아들을 두었다. 맏아들은 김 씨를 잇게 하고 두 아들은 왕비가 강력하게 요구하므로 허 씨로 사성(賜姓)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허 씨 성(姓)의 연원(淵源)은 수로왕의 왕비 보주태후(普州太后) 허황옥(許黃玉)에 두고 있다.

허광태씨의 조상님들은 원래 경상도 고성지방에서 살았었는데 그의 5대조께서는 전국 산하의 물 맑고 산 좋은 고장들을 찾아서 주유(周遊)하며 찾아서 무주군 부남면에 정착 하였단다.
허광태씨는 1955년9월2일 상전면 구룡리 비대마을에서 아버지 허동선씨(향년65세,75세)와 어머니 안점순 여사(77세)와의 사이에서 2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그의 나이 여덟 살 때 상전면 용평리 운암부락으로 이사, 용평초등학교와 안천중학교를 졸업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서 다시 보금자리를 서울로 옮기면서 그는 생각했던 것 같다. 수천 년을 거쳐 경상도로부터 서울까지 몇 대조 할아버지로부터 그 까지 양천 허씨 허광태는 서울시 양천구에 다시 둥지를 튼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집안의 내력이 아닐까? 또는 자신의 운명이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허광태씨가 그렇게 선인고등학교를 거쳐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전 서울산업대학교)와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도 졸업한다. 그리고 서울의 그 양천 땅에 고려외국어학원과 허광태 웅변학원을 세우고 아내와 함께 16년 각고(刻苦)의 세월을 보낸다. 허광태씨의 풍운아(風雲兒)적 운명이 세월은 그렇게 안고 갔다.

1980년대 이 나라의 민주화운동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 조부의 후원을 받으며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어린이회장과 학생회장을 지냈을 만큼, 또는 16년간 웅변학원을 꾸려갔을 만큼 정치적 이였던 그에게 이 세월의 바람이 그냥 지나칠 수가 있었을까?
제4대 서울시의회에서는 문화교육위원회 위원으로, 제5대 서울시의회에서는 예산, 결산특별위원회 대표위원, 그리고 국회정보통신정책자문위원, 세담정보통신(주)회장, 서울시 친환경무단급식추진위원도 맡았다. 소싯적(少時的)에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대통령후보의 전국 유세위원도 맡아봤다.
2002년에는 구청장 후보경선에 참여하였다가 선배 정치인들의 불공정경선에 관한 인간적 갈등과 정치판에 관한 심한 배반의 아픔을 홍역처럼 겪기도 하였다.

이제 그는 제8대 서울특별시의회 114명의 의원을 대표하는 의장이 되었다.
우리의 고향사람 허광태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그는 정치의 순리를 말한다. 그는 먼저 자신이 참으로 이 세상에서 어느 분야에서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간"의 입장에서 계몽사상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관념」에의 접근과 함께 과학문명의 횡포에서 인간을 참 인간적으로 보호하는 정치적 진리를 방법적으로 탐구하자는데 동의한다고 그랬다. 전화번호 / 010-8759-2345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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