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호 장승초등학교 교사

드디어 참샘이다. 목이 마른 아이들은 물을 벌컥 벌컥 마시고 땀이 흐른 아이들은 세수를 하기도 하고 배고픈 아이들은 김밥을 꺼내 점심을 먹고 나눠준 간식도 꺼내 먹었다. 꿀맛 같은 휴식이다. 나도 모르게 희한하게 또 이정표로 눈이 간다. 정말 힘든 아이들 마음을 알겠다. 아이들 몇에게 물어보니 재미있다는 아이도 있고 힘들어 죽겠다는 아이도 있다. 하여튼 아직도 올라온 거리만큼은 올라가야 하거니와 참샘을 출발해 올라가는 돌계단은 백무동 코스에서 가장 힘든 길이기도 하다. 한 시간은 족히 돌계단을 계속 올라야 하니 아이들이 잘 오를까 걱정이 앞선다. 한 30분은 쉬었나? 자, 이제 장터목으로 출발이다. 아이들 입에서 "아유, 또 걸어요?"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벌써 한 시가 넘었으니 이젠 출발해야지. 지금까지 서른 번 정도 왔던 길이지만 올 때마다 참 힘든 길이다. 왜 이렇게 힘들면서도 지리산을 찾을까 나도 나에게 묻는다. 지리산은 참 묘한 매력이 있는 산이다.

산이 힘든 만큼 점점 앞에 가는 아이들과 뒤에 쳐지는 아이들의 간격이 커진다. 결국 예림이, 희주, 채현이, 소연이, 다정이, 하린이가 뒤로 쳐져서 함께 가게 되었다. 올라가면서 힘들 때는 우리가 올라가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면 영화 내내 "아, 힘들어."만 해서 정말 재미없겠다고 웃으면서 그나마 지친 마음을 달래고 올랐다. 한참을 오르다가 털썩 주저앉아 쉬었다.
"다 왔어. 조금만 참아."
"자, 이제 일어나자."

산을 오르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내가 싫기도 하겠지. 오죽했으면 다정이가 킹콩은 거짓말쟁이라고 했을까? 아이들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는데 많이 남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힘들어하는 아이들 몇을 위해 가방을 들어주었더니 왜 내 가방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난리다. 티격태격 말싸움도 하면서 너무 뒤로 쳐지지 않으려고 어렵게 어렵게 산을 올랐다. 그런데 아뿔싸. 아까 쉬던 곳에 들고 가던 예림이 웃옷을 놓고 올라가고 있었다. 이를 어쩌지? 가방을 내려놓고 십여 분을 달려서 내려갔다. 한참을 뛰어서 내려간 끝에 옷을 챙겨 또 갔던 길을 올랐다. 가방을 매지 않고 산길을 가니 편하게 갈 수는 있는데 앞에 간 일행을 따라잡으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온 몸이 땀으로 젖고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다. 하지만 달리고 달려서 드디어 일행을 따라잡고 가방을 챙겨서 또 출발. 한참을 오르니 드디어 장터목산장이 가까이에 보인다. 산장이 눈으로 보여서 그렇게 반가운데 아이들은 또 저만큼을 어떻게 걷느냐며 또 투덜거린다. 아이들이 힘들어하길래 또 우리가 지금 다큐영화를 찍고 있다며 함께 웃었다. 그래도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는 꺼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다른 사람들에겐 비록 재미없는 영화겠지만 사실 우리가 걷는 것이 영화나 다름없는 것이지. 물론 우리네 삶도 그렇지만.

드디어 장터목산장 도착. 와, 정말 반가운 산장이다. 함께 올라온 아이들과 주저앉고 말았다. 시간을 보니 네 시 반이다. 먼저 올라온 아이들은 세시 정도에 올라왔다고 하니 앞에 온 아이들과 한 시간 반이나 차이가 난 셈이다. 먼저 올라온 아이들은 쌩쌩하게 놀고 있다. 이래서 아이들이구나. 정말 회복력이 빠르다 싶다.
이젠 저녁을 차려야 한다. 모둠별로 산장 옆에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식사 준비를 했다. 우리 모둠은 밥과 참치김치찌개다. 아이들이 준비해 온 쌀과 재료를 꺼내고 코펠과 버너를 준비했다. 물이 산장에서 한참을 내려가야 있어서 남자 아이들 몇이 내려가 코펠 가득 물을 떠왔다. 라면을 먹는 모둠도 있고 찌개를 끓이는 모둠도 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픈지 밥만 바라보고 있고 물론 나도 엄청 배가 고파 빨리 밥과 찌개가 되기를 바라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밥이 되고 찌개도 맛있게 끓었다. 이렇게 잘 먹을 수 있나? 뚝딱 코펠 가득 밥과 찌개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었다. 더불어 라면 두 개도 끓여서 금세 먹고 말았다. 산에서 먹는 꿀맛 같은 밥과 찌개. 모든 것이 맛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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