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웅치전몰충혼의백위령제' 열려
내년 위령제, 군민과 함께 현지에서 계획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기까지 우리고장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선현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일 장승초등학교 강당에서 ‘웅치전몰충혼의백위령제’를 지냈다.

이날 위령제에는 초헌관에 최규영 문화원장, 아헌관 김광술 유도회장, 종헌관으로 이두환 성균관 유도회 부귀면 지회장이 나섰고, 웅치대전 순국영령 추모제전위원회(위원장 손석기) 회원을 비롯한 각 기관단체장들도 위령제에 함께 참석했다.

손석기 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우리고장을 위해 선현의 영혼을 추모하고, 위대한 호국정신을 계승 발전하기 위한 성스러운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라면서 “올해는 도로개설로 인한 현지의 여건이 여의치 않아 장승초등학교에서 위령제를 지내지만 내년에는 진안군민의 의지를 한 곳에 모아 현지에서 모실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선 군수는 “웅치대전은 왜구의 침략을 우리고장 의병들의 희생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라면서 “선현의 숭고한 희생은 진안군민 모두 잊지 않고 정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기까지 우리고장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선현을 기리기 위한 '웅치전몰충혼의백위령제'가 20일 장승초등학교에서 열렸다.
웅치전투는?

전북대학교 하태규 교수는 ‘왜적이 전라도를 침범한 시기는 6월 19일 경이었는데 적은 먼저 무주지방으로 공략하고 6월 23일 경에 금산에 이어 용담으로 이동해 약탈과 노략질을 했다’며 ‘이때의 모습을 선조실록에 기술하고 있다’고 ‘웅치전과 그 전적지’에 저술해 놓았다.

선조실록에는 ‘왜적이 전라 충전 군현을 침범해 호남의병이 무너져 본도에 돌아오니 열읍이 막막해 보존키 어려웠지만 광주목사 권율이 병사를 단속해 격문을 이웃 군현에 돌려 지킬 것을 생각해 호남과 영남의 경계를 지키게 하였다.

이 지역의 방어사 광영, 동북현감 황진, 의병장 황박, 나주판관 이복남, 김제군 정담을 웅현과 이현 등이 분포해 들어오는 적을 막게 하였다. 하지만 그때의 적병은 성주 무계 현으로부터 금산 지례의 경계를 경유해 무주와 용담에 들어와 금산을 둔거하였고, 충청도 옥천과 영동, 제현으로 들어와 청주에 둔거해 사방으로 나와 불을 지르고 약탈하였다고 선조수 정인록 권 25, 선조 25년 임진 6월에 기록되었다.

금산과 진안을 왜적이 점거했고, 진안에 이르렀을 때에는 도내 여러 장수들은 곰티재(부귀면)에 머무르며 전주를 지켰으며, 이곳에서 왜적의 선봉을 죽여 왜적이 물러갔다고 한다.(정충록 황한 편, 황안웅 역, 1988)
임란 5년 동안 의병과 관군이 합심해 피 흘려 방어한 결과이며, ‘전라도가 있었기에 조선이 있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군에서는 웅치전적지에 대한 발자취를 재조명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웅치대전 순국영령 추모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성역화 사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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