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오정숙씨
오 정 숙 씨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元平地)마을 출신
한국예총전북지부 이사
한국가요강사협회전북지부 사무국장
(주)지성글로벌 전무이사

봄을 찾아 헤맬 수도 없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닳을 집신조차 없어서 그냥 우두커니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 짖던 세월이 그에겐 있었다. 그것은 생활의 이야기가 아니고 영혼의 이야기였다.

종일토록 봄을 찾아 헤맸건만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닳도록 산 위의 구름만 밟고 다녔다고 그렇게 푸념하는 어느 이름 모를 비구니의 오도송을 좔좔 외우면서 불교에 심취되어 합장하고 있었던 그녀가 둘째 아이의 육신의 고통 앞에 무릎을 꿇는다. 어느 조그마한 신유집회의 내 죄 사함의 권유 앞에서 심한 종교적 갈등을 빚는다. 뜰 앞에 돌아와 웃음 짓고 꽃향기를 맡으니 봄은 이미 나무 가지에 무르익어 있었다.

그녀의 나이 서른아홉 해 봄, 눈부시게 하얀 목련이 피어나던 그 계절에 그는 천주교로의 개종(改宗)에 이른다. 그 것은 심한 부끄러움 이였고 고통이 따르는 용기였다.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 주었고 그녀의 아픈 마음의 생채기는 종교적 성장으로 치유되어 갔다.

그녀가 스물아홉이던 그 해 제1회 전라예술제 가요제에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부르면서 대상에 입상하였을 때 이미 그녀의 바꾸어진 생(生)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야 했었다고 그녀는 고해(告解)하듯 그렇게 조용히 술회하고 있었다.

오정숙씨는 1964년 향리, 원 평지에서 오길현(73세)씨를 아버지로, 이영이(66세)여사를 어머니로 하여 2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마령초등학교, 마령중학교, 마령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재학 중 한 정치 학도를 만난다.

그들은 5년의 의미 있는 긴 줄다리기 속에서 인생의 가치와 인간의 탐구와 그리고 인간의 오만함 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는 인간의 이중성을 공감하기에 이르렀고, 사랑의 성공이 삶의 성공이라는 조그마한 이치를 터득하고 둘의 의미를 포기하는데 합의한다.

겸손과 건전한 가치관을 갖고 있었던 남편은 좋은 인성을 갖춘 남자였다. 정당 사무국 공채요원으로 시작하여 급격한 사회의 시대적 변화를 잘 이기고 그 시대가 무엇을 요구 하는가 하는 질문에도 항상 정답을 도출하고 지금은 정치학 박사가 되어 세 딸의 아버지가 되어 있다고 오정숙씨의 팔불출 닮은 자랑이다.

가식 없이 자유로운 성격으로 변화에 쉽게 대응하는 오정숙씨는 능수능란한 어휘력을 기초하여 직관력과 풍부한 감정으로 많은 사람 앞에 서서 대범한 설득력과 인간적 호소력으로 다중(多衆)을 리드하는 재주를 그녀는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웅진과 청호나이스에서 교육 강사로서 3년을 지냈고, 현재 롯데 전주점의 음치 크리닉 강사와 사단법인 한국가요 강사협회 봉사단(KOSIA)의 이사로 외로운 음지의 곳곳을 찾아가는 저변의 활동을 넓혀가고 있다.

그 뿐인가? 주민자치센타 등에서 주관하는 각종 봉사 활동에도 그녀는 빠짐없이 참여, 환경미화원, 노인잔치, 지체부자유자등 더 많은 외롭고 쓸쓸한 주위의 사람들을 찾아서 봉사에 나선다.
"이웃을 먼저 배려하며 생활 속의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훈훈한 정으로 넘쳐나 우리 도민의 가슴을 더욱 따뜻하게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녀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한국음악 가요강사 협회 전북지회가 2006년 가을에 주최한 불우이웃돕기 가요콘서트에 전라북도 지사가 보내 온 격려 메시지의 한 대목이다.
이런 봉사활동의 틈틈이 그녀는 그녀만의 활동에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2005년에는 작은 음악회를, 2007년 2월에는 K.B.S 전주총국의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선 보였고, 요즈음은 원불교인후교당(전주)에서 연세 많은 노인 분들을 대상으로 트로트, 발라드 등의 가요를 전수하는 한편, 마일리지 자판기 제조회사인 (주)지성글로벌 을 창업하여 경제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우리의 고향사람 오정숙씨.
그는 가끔씩 고향(故鄕)을 찾아서 두 분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친정(親庭)나들이에서 고향과 향수와 이별에 관하여 그리고 외로움이 가슴에 아픔으로 다가서는 것을 느낄 때마다 가능 할 수만 있다면 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마을회관에 모여 앉아 점심으로 때우시는 어머니 또래의 저 노인들에게 가만히 속삭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그래서 불러 준다. 수구초심(首丘初心).―옛 사람이 이르기를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향하는 것은 인(仁 )이라 했다지 않는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근본을 잊지 않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 지금 가는 이 길이/정녕 외롭고 쓸쓸하지만 내가 가야 할 인생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 지금 가는 이 길이/정녕 고난의 길이라지만 우리 가야 할 인생길/
아무도 몰라도 좋아 내 주님 가신 이 길을/나의 꿈 피어나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오정숙씨 연락처: 010-2411-1484>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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